지난 달 10일, 대구 서부터미널에는 새벽 4시 30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문 긴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야말로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만원이 되어버린 버스가 떠나고 나면 줄어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새벽 어스름을 헤치고 대구 시내를 벗어난 버스가 88고속도로에 접어 들면서부터는 서울과 부산, 영남의 각지와, 호남 등지에서 밤새 달려온 또다른 차량과 만나 새로 이룬 행렬의 뒤를 물어야 했다. 가는 듯 마는 듯 해인사 톨게이트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조급한 마음에 그나마 버스도 비워두고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14 킬로미터. 순례의 무리들은 그렇게 해인행(海印行)으로 가야산 빈골짜기를 꾸역꾸역 메웠건만, 가야산은 부르르 몸서리치며 낙엽만 떨구고 홍류계곡에 흘리는 물소리로 비장한 울부짖음만 깊게 했다.
청명하던 가을 하늘도 사흘을 울었다. 가야산 자락에는 이 산이 가슴을 열어 인간을 품었던 먼먼 태고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성철 큰스님! 평소에 그를 알았던 이들은 물론, 이름자만 듣고 마음으로만 생각했던 이들, 설령 몰랐던 이들까지 모두 이 몇 일동안은 가슴에 가야산만큼의 무게를 얹고 살았다.
生平欺誑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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