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이야기 있는 세상
상태바
책과 이야기 있는 세상
  • 관리자
  • 승인 2007.1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저녁 먹은 후의 밤 시간을 좋아했다. 하루종일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난 날의 밤은 더욱 좋았다. 그런 날은 아무런 부담 없이 나만의 귀한 시간을 맘놓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의 밤은 대개 두 가지의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첫째는 아버지에게서 듣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한없이 한없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공상의 세계이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듣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려고 했고 아버지가 늦게 오시는 날은 그 이야기들을 반추하며 상상의 날개를 넓게 폈다.
나의 밤 시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커서 어른이 되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낮에 해야 할 잡다한 일에서 벗어나 나만의 호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하루의 일이 힘들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는 대개 책을 읽는다.
나는 읽어야 할 책과 만나기 위하여 일을 열심히 하고 귀가를 서두른다.
그리고는 내 작은 방에 참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전날 읽다 둔 것이나 또는 새 책을 펼친다.
내가 책을 즐겨 읽는 것은 그 속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즐겁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고 기다리는 것은 그들에게서 보게 되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대개 내가 못 가진 아름다움이다.
나는 매일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나의 이 병과도 같은 갈증은 책을 읽으면서 해소된다.
책, 그것에야말로 얼마나 많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친해져 그들은 내 영혼의 세계에서 옛친구처럼, 스승처럼, 때로는 부모나 형제처럼 다정하고 연인처럼 사랑스럽다.
나는 전생에서도 못 만났을 수많은 사람들을 책 속에서 만나고 내세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그곳에서 만난다.
나는 때때로 어떤 알지 못할 사람을 그리워한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 어딘가에 꼭 있어야만 할 사람에의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이 가득 차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을 만들어 낸다.
떠돌이 시인과 고쳐요 아저씨와 큰 별 선생님, 고물상 강씨 등은 내 사랑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고 밀린 일이 없는 조용한 밤을 나는 사랑한다. 그런 조용한 밤 내 작은 방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일 중에서 가장 신명나는 일 중의 하나이다.
내 방에는 어느새 옛날에 살았던 현자들과 근세의 위인들과 이름 없는 자연인들과 낮에 또는 엊그제 혹은 한 달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내 영혼 속에서 만들어진 사람들로 가득 차고 나는 그들 속에서 행복하다.
나는 숨을 쉬고 밥을 먹듯 책을 읽고 이야기 속에서 산다. 이야기가 있는 세상이야말로 살 맛이 나는 세상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야말로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든 신나는 세상이다.
나는 하루의 일이 피곤할 때 나를 기다리는 머리맡의 책들을 생각한다.
책이 있는 한 나는 언제나 신이 난다.

이가을: `41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라퐁텐 우화집’ ‘뿔난아이’ ‘별이야 나온나’ ‘좋은 친구 댕댕이’ 등의 동화집과 장편 소년소설 ‘떠돌이 시인의 나라’ ‘이야기 있는 세상’ ‘솔숲마을 사람들’ 현재는 季刊<어린이>발행인으로 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