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여인, 문정왕후(文定王后)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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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의 여인, 문정왕후(文定王后)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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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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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양민(良民)이 날로 줄어들고 군졸의 인고함은 이보다 더할 수가 없다. 이는 다른 데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백성의 자식들이 군역(軍役)을 피하여 모두 도망가서 승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려들은 날로 많아지고 군병(軍兵)은 매일 줄어드니 매우 한심한 일이다. 대체로 보아서 승려들 중에 통령(統領)하는 바가 없으므로 잡승(雜僧)을 금지하지를 못한다. 조종조(祖宗朝)의 대전(大典)에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을 설립하였던 것은 불법을 숭상하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승려가 되는 길을 금하고 방지하고자 함이었다. 근자에와서 선교종(禪敎宗)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봉은사(奉恩寺)와 봉선사(奉先寺)를 선종과 교종의 본사로 삼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여 대선취재(大選取才, 僧科)의 조(條)와 승려되는(度僧) 조건을 밝혀서 실시하도록 하라.”

위의 내용은 김영태 교수의 논문 「敎團復興의 역사성과 意義-聖師普雨의 殉敎精神을 중심으로-」의 제 10쪽에서 인용한 글이다. 다시 말해서 문정왕후가 불교를 부흥시키고자 하여 당시의 불교현실과 정치사회를 연결시켜 방편으로 내건 기치다.

문정왕후는 1501~1565(연산 7~ 명종20)의 생몰연대를 지닌 조선조 중엽의 가장 위대한 불심의 여인이었으며 또 대단한 여걸이었다. 중종(中宗)의 계비로서 본관은 파평이며 그녀의 부친은 영돈녕부사였던 윤지임이다. 1517(중종 1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명종을 낳았다.

1545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20세가 될 때까지 8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다.그녀는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에게 정권을 쥐게 한 결과 인종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윤원로를 해남으로 귀양보내고 윤임 등은 사사하였다.

특히 그녀는 불교의 혜명이 끊일 것을 염려하던 중 위의 칙문을 공포하여 불교의 승과를 다시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1550(명종5)년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고 승과와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면서 그 대임을 허응당 보우선사에게 맡겼다. 거기서 청허당 서산대사와 같은 위대한 고승이 배출되었으며 한국불교는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하였다.

문정왕후는 보우선사를 선종의 대본산인 봉은사 주지로 위촉하는가 하면 그녀의 부군이었던 중종의 능을 보우선사가 주석하고 있는 봉은사로 이장하기까지 하였다. 그녀는 1553년 명종이 약관의 나이가 되어 성인이 되자 관례에 따라 국정을 명종에게 맡겼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최고 실력자로서 군림하였다. 따라서 그녀의 동생인 윤원형 등 친척에게 중임을 맡겨 정사를 좌우하게 하였다. 그녀의 소생으로는 명종 외에 의혜공주, 효순공주, 경현공주, 인순공주를 두어 모두 1남4녀나 되었다. 그녀의 능호는 태릉(泰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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