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간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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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간오도
  • 관리자
  • 승인 2007.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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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16]/ 원효성사

원효는 밝은 해를 한동안 응시하더니 의상이 서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원효는 의상을 바라보며 밝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의상을 끌어 안는다.
“형님---.”
“오-- 아우여 ····.”
그들은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을 수 없다기보다 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실상(實相)은 이언(離言)이요 진리(眞理)는 비동(比動)이란 말은 바로 이들에 적용되는 글귀이거니와, 마음의 때[心垢]를 말끔히 씻어버린 원효의 가슴에는 오직 환희와 싱그러움만이 충만하여 있어서 의상은 원효의 몸에서 전에 느끼지 못한 그지 없는 향기가 풍겨나옴을 맡을 수 있었다.
의상은 원효가 심기일전(心機一轉)한 것이 마치 자기가 한 짓인 양 더할 수 없이 기뻤다.
오랫동안 서로 얼싸안고 말없이 서있다가 서로 떨어지며 의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 감사하고 거룩하십니다.”
“모두가 아우님 덕분이야.”
그들은 다시한번 힘주어 얼싸안으며 큰소리로 웃어 제꼈다.
이 때 그들의 등뒤에서 인기척이 나기에 두 사람의 시선은 똑같이 그리로 쏠렸다.
육십 대의 노파와 이십 세 가량 되어 보이는 장정이 음식을 이고 지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형님, 간밤의 그 관 주인인 듯 하네요.”
“그런가 보군. 어서 아기관을 치워야겠는걸.”
그들은 묘 안으로 들어가서 아기관을 치우고 돗자리를 대강 정리했다. 그들이 단정히 앉아 새 관을 향해 염불해 주고 있을 때 관 주인이 나타났다.
노파는 머리에 이고 온 함지를 내려놓고 한동안 두 스님을 지켜보더니 안색이 밝아지며 잽싼 동작으로 관 앞의 음식상을 치우고 새 음식을 차린다.
그리고는 의상 곁에 합장하고 꿇어앉아 염불소리에 귀를 모은다. 지게에 음식을 지고온 장정은 노파댁의 하인인 듯 묘 밖에서 서성거리며 이따금씩 묘 안으로 얼굴을 내밀곤 하는 것이었다.
반시간 남짓의 정중한 염불이 끝나자 노파는 관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이어 원효와 의상에게 한번씩 절한다.
이어 노파는 뭐라고 중국말을 하는데 둘이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저 합장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 감사하단 인사였을 것이다.
노파는 음식상을 두 스님 사이로 옮겨놓고 어서 듭시사 하고 중얼거린다.
둘이는 맛있게 먹었다. 원효는 새삼 음식의 참맛을 알은 듯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노파와 헤어져서 다시 공동묘지를 벗어나 서남쪽으로 향했다. 가다가 길이 둘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원효는 발을 멈춘다.
“아우여.”
“네에?”
“나는 신라로 돌아갈려네.”
“본국으로요?”
의상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응, 본국으로.“
“거의 다 왔는데 포기하다니요?”
“중국에 가도 더 배울 게 없을 것 같아 삼계유심(三界唯心)의 도리를 깨치고 나니 더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지를 않군 그래.”
“·······.”
“중원에 가면 달마의 선법을 이으신 오조 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도 뵙고 싶었고 현장삼장(玄奘三藏)도 뵈옵고 싶었는데 이제는 만사휴이(萬事休矣)야.”
“·······.”
의상은 ‘나는 어떡하구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직도 수천 리 남았는데 아우 혼자 가라기가 저으기 걸리네만····· 용서하게.”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여지껏 왔던 길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 싸움으로 매우 위험한 길이었음을 알고 있는 의상인지라 원효를 염려해 주는 말이었다.
“내 지금 즉흥적인 생각이네만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바다가 나올 거고 배가 정박한 항구도 있을 것 같네.”
“아 그게 좋겠소, 선편을 이용하시지요.”
“기왕이면 아우도 선편을 이용하면 어떨까?”
“저도 그렇게 할까요?”
의상은 뛸 듯이 기뻐한다. 배에 오를 때까지는 원효와 헤어지지 않을 터이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말이다.
그들은 진로를 바꾸어 남쪽으로 향하였다.
사흘 뒤, 항구에 닿은 그들은 신라로 떠나는 상선과 상해(上海)방면으로 가는 배를 찾았다.
그리하여 항구에 도착한 지 닷새 뒤에 그들은 각기 다른 배에 올랐다. 두 배는 거의 같은 시각에 항구를 출발하였으므로 나란히 항해하였다.
의상은 원효와 헤어지면서 지난날 어버이를 하직할 때보다 더 서운함을 느꼈다. 평생을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맘먹었던 원이 이렇게 허무하게 산산조각이 나다니·····.
두 배는 이윽고 항해한 지 사흘만에 서로 진로를 바꾸었다.
원효가 탄 배는 남남동(南南東)으로 의상이 탄 배는 서남간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원효와 의상은 서로 모습을 식별하지 못할 때까지 뱃전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을 아쉬워 했다.
“아우여, 잘 다녀오오.”
의상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형님, 무사히 귀국하셔서 우리 신라인을 제도하십시오, 이 아우도 훌륭한 장부가 되어 형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형님·····.”
서북풍을 받은 배는 빠른 속도로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파도도 사정없이 일렁인다. 그러나 원효는 이에는 아랑곳없이 추위를 무릅쓰고 의상의 배가 안 보일 때까지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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