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호법 행각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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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호법 행각의 시절
  • 관리자
  • 승인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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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師의 雲水시절

󰊱 花果院 싸움

문경 대승사에서 용성스님을 모시고 화엄경 산림을 마친 후 삼동을 분란 속에서도 애써 공부하고 봉익동 대각사로 올라왔다. 용성 조실스님은 아무래도 내가 의지할 마음의 스님이었다. 그런데 용성 스님은 함양 화과원으로 가시면서 같이 가겠느냐고 물으셨다. 노스님 역시 나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적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가는 곳마다 싸움을 하게 되었다. 죽비 밑에서 화두하고나 싸움을 하면 좋았을터인데 어쩐지 주먹다짐을 하고 싸울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런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지만 나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한 토막은 되는 것이기에 한 두 가지만 말해본다.

우선 화과원에서의 일인데 화과원은 여순반란 중에 불타고 지금은 없다 한다. 용성 스님이 새로운 총림을 개혁하고 과일나무를 심고 임야을 개발하며 총림을 구상하셨던 곳이다. 그곳에서 여름을 지내는데 나에게 배당된 소임이 산을 지키는 산지기였다. 그런데 산에 풀베러 들어오는 초군을 막는 것이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밤에는 정진하고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애는 썼지마는 역시 내 생각에는 초군 말리는 일이 정말 버거웠다. 하도 초군들이 억세고 말을 안 듣기에 무단정치를 할 작정을 하였다. 나는 몽둥이를 들고 산 아래 길목에 서 있으려니 역시 초군들이 떼를 지어 올라 온다. 나는 소리치기를 『일초일목이라도 베어 가면 도적이다.』하였지만 그 사람들은 웬 봄바람이냐 하는 식으로 허허 웃고는 산에 들어와 마구 풀을 벤다 자기들의 군세를 믿는 것이다. 나는 사정없이 덤벼들어 지게를 부수고 붙잡으며 낫을 뺏었다. 이러지 않고는 산을 지켜낼 재간이 없었다. 내가 한 번 길을 들여 놓고 떠나면 앞으로라도 산이 온전하겠지 하는 심산에서였다.

그러나 사태는 달랐다. 이러기를 두 주일 쯤 지나서 하루는 산 아래 마을에 사는 노처사님이 밤중에 헐레벌떡 올라왔다. 하는 말이 『백전(그 곳이 백전면 백운리였다.) 초군들이 모여서 내일은 절 산지기를 죽여서 불태우고 절도 불지른다.』고 모의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분개하였으나 절에 화가 닥치면 조실스님께도 죄송스럽고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떠나고 없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났다. 그때 경성스님이 원주였었는데 역시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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