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의 약사(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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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의 약사(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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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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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불교의 전래와 수용(受容)

중국에 불교가 들어 온 시기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어 일정치 않다. 그 중 유명한 전설(傳說)은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영평(永平) 10년(AD.67)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낙양(洛陽)에 이르러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42장경(章經)을 번역하였다고 하는 것이나 이는 역사적 사실로는 인정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설(設)은 『三國志』중의 『魏志』에 인용된 『魏略』의 문(文)중 전한(前漢)末哀帝의 원수원년(元壽元年 BC.2) 박사제자경노(博士弟子景盧)가 대월씨왕(大月氏王)의 사자이존(使者伊存)에게서 부도경(浮屠經)을 구전(口傳)해 받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後漢書』권72․楚王英傳에 의하면 英(?~72)은 평소에 불법(佛法)을 신봉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英은 後에 단양(丹陽)으로 좌천되어 갔는데, 이무렵 불사(佛寺) 및 불상(佛像)을 조성(造成)한 책륭(笮融)은 단양에 가까운 지방의 인물이었다.

중국인이 처음 한역된 경전을 접하게 된 것은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懺)에 의해서이다. 안세고에 의하여 번역된 『安般守意經』은 중국 선사상(禪思想)에 지루가참에 의하영 번역된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은 정토사상(淨土思想)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⑵ 위진(魏晋)의 불교

한(漢)이 망한 후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西晋)에 이르는 사이에 중국의 사회나 사상계는 큰 변혁기를 맞이하였고 외래문화였던 불교가 중국의 사상으로 소화되기도 하였다. 반야연구(般若硏究)가 성하여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으로 반야(般若)의 공사상(空思想)을 이해하려 하였다. 이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 부른다.

위(魏)의 주사행(朱士行)은 반야(般若)의 연구 및 그 완본을 구하기 위하여 코-탄에 가서, 구해왔으며 오(吳)의 지겸(支謙), 강승회(康僧會․?~280)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308) 등의 번역활동은 중국불교 발전의 기초을 이루었다.

서진(西晋)이 망하고, 진실(晋室)이 남도(南渡)하여 동진(東晋)을 세우고 북지(北地)에는 소위 5호 16국(五胡十六國)이 발흥(勃興)하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불도징(佛圖澄)을 뺄 수 없으며 한(漢)인의 출가(出家)가 인정된 것도 이 시기이며, 불도징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불도징의 문하(門下)에서 도안(道安)이 배출되었다.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장안(長安)에 이르르고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에 백련사(白蓮社)를 세운 것도 이 시대이며 한국(韓國)에 불교가 전하여 진 것도 이시대인 것이다.

⑶ 남북조(南北朝)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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