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치
장항선 삽교에서 기차를 내리면 서쪽 하늘에 우뚝 솟은 수려한 산을 대한다. 호서의 금강이라고 이르는 덕숭산이다. 높이는 480m 에 불과하지만 산수는 이름 그대로 숭엄하다. 덕숭산 남쪽 계곡을 흐르는 산이 바로 수덕사의 기지다. 삽교에서 덕산을 지나 산 아래 주차장에 이르는 거리는 자동차로 약 30분, 동구에 이르면 뜻밖에 소란한 여염의 거리다. 수덕사 문전에는 관광객을 위한 상가나 숙박시설이 들어선다.
덕숭산은 산 위에 정혜사가 자리하고 산 아래 서편에 견성암이, 그리고 남쪽 기슭에 수덕사가 차지하며 그 사이에 수많은 암자가 혹은 개울에, 혹은 바위에 의지하여 흩어져 있다. 오늘날 수덕사는 한국불교 선의 중흥지로써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것은 근대 한국 선맥의 큰 봉우리인 만공{滿空}스님이 이곳에 머무시며 법을 펴고 오늘의 한국불교의 중요한 맥이 흐르는 원류이기 때문이다.
[2] 창건내력
수덕사의 창건 연대에 대하여는 이설이 있으나 백제 법왕{法王} 1년 {서기 599년}이고 개산주는 지명{智明}법사라고 전해온다. 지명이라는 이름이 그 당시 신라 고승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라 지명법사는 서기 585 년 중국에 들어가 629년에 돌아온 신라의 대표적 율사[律師}인데 그가 백제에 와서 절을 지었다고는 믿어지지 않고 연대도 맞지 않는다. 그때로 부터 좀 연대가 내려와 백제말 숭제{崇濟}법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는데, 백제 법왕 때로 부터 60년 후에 백제가 망했으니 수덕사의 창건은 대개 서기 600년 상반기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 시대는 한반도가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이 정립하여 크게 위세를 떨치며 자웅을 겨루고 있었던 때다. 밖으로 천하의 태평과 국가의 안정과 겨레의 번영을 희구했던 당시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수덕사는 국내의 여건 속에 뜨거운 염원의 결실로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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