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서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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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서쪽에서
  • 관리자
  • 승인 2007.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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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교영화가 영화계와 영화애호가들의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역시 불교영화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로카르노 영화제의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하여 이들 한국의 불교영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남지심의 불교소설 ‘우담바라’가 또한 영화화 되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바야흐로 우리의 불교영화는 그 황금기를 맞이한 듯하다. 사실 과거에도 불교영화는 몇편 제작된 바 있었다. 그러나 대개 작품 수준이 떨어지거나 불교영화란 탈을 쓰고 세속적인 흥미를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별다른 평가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비하여 요즘의 불교영화 붐은 한국의 영화수준은 물론 불교를 위하여도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 하겠다.

그 중에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그 스토리를 초월한 특이한 내용이나, 심오한 선의 분위기와 정신을 영상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여타 불교영화와 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관심을 끄는 제목은 선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조사서래의’를 나타낸 것이어서 그 의미가 깊다. 즉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이라는 말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사서래의’라는 말은 ‘정전백수’라는 공안과 관련되는 유명한 선화다.

무문혜계의 공안집 <무문관> 제37칙에 보면 어느 제자가 조주스님에게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물으니 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니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물음은 불교의 근본적 뜻, 또는 선의 진면목을 물은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대답이 엉뚱하게 나왔던 것이다. 하기야 동산스님은 불법을 “뒷간의 똥막대기”라고도 한 터여서 조주스님의 대답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문제는 이들 선문답의 참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원래 선문답이란 높은 비유와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이어서 일상적인 이해의 접근을 불허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뜰 앞의 잣나무’가 불법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의 잣나무는 단순한 객관적 존재로서의 수목이 아니다. 깨달은 이의 입장에서 볼 때 우주란 어느 하나도 진리의 당체 아닌 것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의 잣나무는 주객일여의 입장에서 자타불이의 경지를 체득한 진여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을 체득하는 방법은 선의 체험을 통하여 스스로 잣나무가 되어 보는 길 밖에 없다. 여기에 범인이 이를 수 없는 선의 높은 경지가 있는 것이다. ‘조사서래의’를 시화한 고려말의 스님 경한과 혜근의 다음 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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