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불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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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불교인
  • 관리자
  • 승인 2007.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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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수상

한적하고 조용한 산사에서 혼자만의 깊은 상념에 잠겨 보는 시간은 좁게는 나의 생활을 되돌아 보게
하고 나와 불교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가를 자문자답케 하는 귀중한 순간이 되곤한다. 때로는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학도의 처지에서 과거의 불교와 오늘의 불교는 어떻게 변화 변질되었는가 하는 궁금증에 휩싸이기도 한다. 불교의 현묘한 진리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며 다가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섭섭하도 저만치 가려고 할 때도 있어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적시기도 한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깊게자리잡은 불교와 그 진리는 항상 바다를 삼키고 태산을 움직여도 부족하리만치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언제나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움직여서 전후좌우로 가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교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그것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진실로 믿고 있다.
필자는 아주 오래 전에 스님도 당당하게 자동차 운전도 하고 좋은 영화도 떳떳하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것은 스님들로 하여금 현실에의 적응과 이로부터 생생하게 체득하여 사회의 구석
구석을 그 때 그 때 알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삼보(三寶)에 귀의한다고 하면서 스님들만은 과거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만을 바라거나 요구하는 것은 오늘의 역사와 문화를 못 판단한데서 기인한다. 사회가 변하고 문화생활이 변하면 불자들의 생활방식이 변하는 것처럼 이와 연관이 깊은 스님들의 생활에도 작으나마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스님의 생활이 급변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지만 종단을 이끌고 지키며 한편으로 불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하자면 최소한의 현실생활의 변화는 충분히 인지하여야 한다.
오늘을 사는 불교인들은 지나간 왕조시대의 불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존경하는 스님들도 과거 왕조시대의 스님들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불교만이 있었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다른 종교인들과 섞여 생활하고 있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불자들이 다른 어느 종교인들보다 더 마음이 넓어야
하고 더 포용적인 자세로 견지하는 것이 선인들이 훌륭했던 유산을 이어받는 길이다. 사찰의 구석에 오
늘날까지 남아있는 비불교적인 요소는 바로 지난 날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그들을 포용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이타행(利他行)으로 나가는 자신감에 차 있어야 그것이 가능
진다. 우리는 흔히 우리 나라의 모든 종교가 너무나 개인이나 가족의 복을 비는, 지나치게 좁은 구복
신앙에 빠져 있다는 비난의 소리를 듣곤 한다. 이것은 모든 종교가 일차적으로 지향하는 하나의 과정이
지만 이같은 목적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목청을 높일 때 자기 중심적인 편견에 떨어지게 되는 불행을 맞게된다.
왕조시대가 아닌 민주사회의 길목에서 오늘의 불교인들은 세련된 마음의 양식과 행동의 멋을 구가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불교인들이 하고 있는 활동이 아무리 사회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하여도 집단으로의 불자
들의 활동이 사회의 변화발전에 뒤떨어지게 되면 자연 전체불교인의 사회적 위치는 뒤로 밀려날 우려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훌륭한 불자가 탄생하는 것은 경하할 만한 일이지만 단체로서의 불자들 힘이
미약해 진다면 이는 불교인 모두의 어디엔가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전체로서의 불교인 결속에 미흡함이 있게 되면 정치권을 포함한 권력기구로부터 보이지 않는 간섭과 부적절한 대우를 받게될 소지가 있게 된다. 이것은 한 사람의 덕망있는 불자가 사회로부터 격식을 갖춘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과는 매우 다른 문제가 된다. 세련된 불교인은 개인이 받는 행복이나 회로부터의 존경 못지않게 이 땅의 불교가 어느 종교보다도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나라의 종교가 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세련된 불교인은 특정계층을 만족시키는 종교가 아니라 전 계층의 지지기반을 둔 종교로 한층 발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자신의 수행과 불교와의 일치 불일치를 견주어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나라의 불교인이 사회에 대해서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는가 능동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불자들 개인의 처지에서는 얼마든지 의견이 많이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생활에 안주하다 보면 개선 내지는 개혁의 정신이 때때로 퇴영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개인적인 만족에서 오는 느긋한 태도가 주변의 변화물결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앉아 버리게 되면서 선의의 경쟁을 외면하게 된다. 오늘을 사는 불교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끌고 가겠다는 개혁의 의지를 잠시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수행은 제쳐놓고 사회의 개혁만을 외치는 사람도 우습지만 그렇다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세계를 외면한 채 현실에의 안주만을 수행의 미덕으로 삼는 것도 반성을 해야 한다. 세련된 불교인의 자세는 양자를 모두 수용하는 일이며 변화의 파도에 적극 대처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불교인이 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땅의 불교는 한층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그것은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불교와 불자를 보호받게 하는 길이며 따라서 이 나라의 불교인은 정당한
국가권력이 행사되도록 이끌고 나갈 힘을 뭉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교인이 이 땅에 존재하면서 젊잖은 생활자세를 갖는 동안 세상은 불교와 불교인의 사회적
공헌을 너무나 종종 외면하고 말았다. 이제는 하루 빨리 현실을 더욱 직시하는 세련된 불교인으로 돌아
와 불교인의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할 시가가 된 것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왕조시대의 불교인이 아님을
오랜동안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새롭게 보이는 것이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거
의 운전자가 되었음을 크게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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