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반 속의 怪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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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 속의 怪木
  • 관리자
  • 승인 2007.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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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그늘

  8년 전, 동생이 등산길에서 해괴한 고목 하나를 주었다.

  이름도 모르고 가름할 수도 없는 거목의 잔해는 수반에 담아 꽃을 곁들이면 어느 수석 수집가의 괴이한 돌처럼 멋있는 기품이 더욱 정이 간다.

  병들어 패인 깊은 상처를 소용돌이 치며 아문 흔적이며 젊음을 과시하던 시절이나 죽은 뒤의 허허로움을 난들 짐작이나 하겠는가마는 안으로 안으로 새겨 담은 풍운의 세월에 응어리진 한이 들어 썩고, 잘리고 뭉쳐진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이러한 고목의 잔해에서 묵묵히 참고 사는 인내를 배우려고 깊이  페인 상처에다 장마통에 불록담을 비집고 나온 이끼를 떼어다 입혔다. 장난삼아 해 본 것이 정성이 들었던지 서로 의지하여 새파란 싹들이  돋아나서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거기에 금상첨화{錦上添化}로 아주 작고 예쁜 버섯이 파아란 이끼를 헤치고 뾰조록히 올라오지 않는가! 여덟 해를 말리고 적시던 고목인데 어디에 그 포자가 남아 있어 이렇게 작고 예쁜 버섯이 날까? 검은 수반에 담아 놓고 하얗고 예쁜 마가렛 일곱 송이와 난잎을 세웠더니 촉촉히 물을 머금고 비탈에 선 버섯이 삿갓을 폈다.

  작은 삿갓 밑으로 희고 가는 줄기는 마치 심산유곡에 선 나이 어린 여승 같기만 하다.

  마가렛 흰 꽃잎처럼 청아함을 난의 줄기찬 잎의 의지로 법의 깊은 곳에 감추어 꽃 피우는 여승의 깊은 가슴을 닮은 숭고함이 가슴깊이 파고 드는 듯하다.

  백설공주와 살던 마음 착한 일곱 난장이의 모양같은 작은 꽃들과 눈꼽만한 푸른 이끼들이 사는 한 조각의 나무등걸이 어느 틈엔가 고요와 어둠이 연막을 치는 자정이 넘은 깊은 밤이 되자 불빛에 비친 모습은 점점 거대한 심산유곡으로 변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고 순간 나는 무아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는 듯 하다.

  활짝 피어 5시간을 채 못 넘기고 일그러진 작은 버섯은 어린 여승이 억년을 고요히 생각하다 만 한 넋 같이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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