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속에 깨달은 부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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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속에 깨달은 부처님 나라
  • 관리자
  • 승인 2007.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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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佛心/-홍명(弘明) 이 빈(李彬) 거사-

  내 고향 부처님 나라

  오랜 세월에 걸쳐 선대 (先代) 의 삶을 숨결이 고동치고 꽃피었던 땅, 또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어지러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버린 홍명 (弘明) 이 빈 (李彬) 거사는 실향민이다.

  사람들이 건실하고 유난히 교육열이 높았던 고향 함남 북청. 그곳에서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무리 고향에 가고파도 갈 수 없는 서러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저는 더없이 소중하고 은혜로운 불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법을 통해서 무상진리의 빛이신 부처님세계가 곧 우리의 영원한 귀의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사는 비록 현실에서의 고향을 잃었지만, 부처님 나라에서 성스러운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창조적 생활을 열어 가게 됨을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불국토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불자로서 자신을 밝고 맑게 성장시키며 살고 있다. 이렇듯 인생의 참된 주체자로 새롭게 눈뜨기까지는 숱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거사는 보성고보 (普成高普, 현 보성고등학교) 를 거쳐 연회전문학교 (延禧專門學校, 현 연세대학교) 상과(商科) 를 졸업 후 지도화 (志度華) 김 수월 (金數月) 보살과 결혼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학도병으로 징병되었다. 소속부대는 중국을 거쳐 남방 전선으로 갈려고 했었으나 작전 상황의 변화로 상해 (上海 ) 에 주둔했다. 1년 쯤 지나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은 황급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상해와 남경 (南京)  사이 진강 (鎭江) 역 열차 안에서 부대장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일본은 무조건 항복한다」는 전문을 읽었다. 해방!...... ,

  강건너 산넘어

  빼앗긴 자유를 다시 찾기는 어려웠다. 해방은 되었지만 아직도 형식적으로는 일본군이었다. 당장 남경 역에서 중국군에 의해 다른 일본군과 함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다「이러다가 뭔가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거사는 한국인의 수용에 대한 부당성을 항변했다. 그러고 나서 이런 저런 수속 절차를 마치고 수용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귀국 도중에 장개석의 중국군과 모택동의 중공군을 만날 때마다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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