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뿌리가 되리라
상태바
튼튼한 뿌리가 되리라
  • 관리자
  • 승인 2007.10.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앙 수기

  1 집에서 쫓겨나다

 부농가정에서 윤택한 생활을 누리며 성장한 저는,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서울 백분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를 다닌 저는 한때 성경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그다지 관심은 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제가 불가에 들어온 동기를 말씀드리면 6.25 후퇴 해서 환도에서 주인이 게석광산을 시작했습니다.

 자금 때문에 집을 이중삼중으로 은행에 저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자도 못줄 형편까지 되었습니다. 어느날 점심을 먹는데 20여명 험상궂은 사람들이 몰려와 가구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어서 나가라고 등을 밀어 냈습니다. 밥도 먹다 말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며 쫓겨 나왔습니다. 집을 뒤로 한 그때 저의 나이 40세였고, 국민하교 1학년 아들과 그밑에 딸애, 두 남매는 눈물만 흘렸고 그런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친정으로 갔습니다.

 친정에서는 전세집까지 마련해 주었지만 그것도 유지 못하고 다시 전세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새침떼기였고 고생을 몰랐던 저는 눈앞이 캄캄하고 죽고만 싶었습니다. 주인집 할머니는 60세가 넘은 깨끗한 분인데 아침이면 항상 예불을 하십니다.

 저의 사정을 듣고 할머님은 그때 인과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 도선사에 가자고 했습니다.

  2 교통비를 불전에 올리다.

 그후 관음재일 말고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절에 가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부처님께 기원했습니다.

「업장을 소멸케 하시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소서」하며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아침을 먹으면 저녁을 지을 쌀이 없는 형편이라 염주도 하나 갖지 못하여 종이 위에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써가며 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교통비만 마련해서 절에 다니던 그 무렵, 도선사 호국 참회원 건립이 있었습니다.

 상량을 올릴 때 큰 대들보를 앞에 놓고 스님 세 분께서 염불 하시는데 많은 신도가 줄을지어 불전을 놓고 삼배를 합니다. 저는 돈이 없을텐데… 공양을 올릴 수 있을까 하며 정신없이 서있다가 지갑을 열어보니 돈이 있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정성스레 공양을 올렸습니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 오던 중 지갑을 열어 보니 빈 지갑 뿐이었습니다. 교통비를 공양금으로 올렸던 것입니다.

 바위에 걸터 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집에 갈 일을 생각하는데, 어느 훤출한 신사 한 분이 내려 오시기에 벌떡 일어나 절하며 도선사 신도라고 말하고 교통비를 빌려달라고 청했더니 아무 말없이 돈을 주고 하산했습니다.

 그 신사는 다음 달 관음재일에 가서도 뵙지 못하고 오늘날 까지도 뵙지 못하여 잊지못할 고마운 분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3 이 고통은 나의 업의 소치이다.

 불전도 놓지 못하고 공양만 하고 와야 했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부처님께 서원을 드렸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