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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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 관리자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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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씨앗

내 삶의 여정이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문득 나는 어떤 열매로 감사의 마음을 내놓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정말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 욕심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이제라도 나의 건강과 시간을 내어 놓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할 일을 찾게 되었다.
그 때 깨어지는 가정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져서 보육시설에서 양육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일에 나의 조그만 힘을 보태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심과는 달리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한국수양부모협회를 통하여 위탁부모교육을 3일간 받게 되었고, 교육 받은 후 수빈이라는 9개월 된 여자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수빈이는 어른들만 살던 우리 집을 활기 있게 바꾸어놓았다. 매일 우리 가족은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빈이 엄마가 얼마나 수빈이가 보고 싶을까를 생각하면서 아이의 사진과 아이의 양육과정이나 발달 상태 등을 카페에 올리게 되었고, 아이 엄마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카페에서 달래곤 하였다.
나의 생활은 수빈이로 인하여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밥만 먹고 나면 수다 떨던 시간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하는 일에 쓰여 졌다. 할머니인지 늦둥이 엄마인지, 주변사람들의 질문에 그저 미소로 대답하게 되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가정위탁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주변에서 이 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서게 되면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집단양육을 받지 않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수빈이를 키운지 5개월이 지났을 때 용진이라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한 명 더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 댁에서 자라고 있다는 용진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지만 “아이가 무작정 집을 나간다거나 말썽을 피우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그렇게 큰 아이를 데려오느냐”며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용진이는 작년 7월 3일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란 눈이 아주 강한 인상을 주어서 동남아에서 데려왔느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친구들한테도 놀림을 받다 보니 용진이는 거의 매일 싸웠다. 용진이에게 엄청난 분노가 쌓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용진이 때문에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담임선생님의 하소연, 심지어 언제까지 용진이를 데리고 있을 계획이냐는 질문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방학이 되어 일단 용진이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일 것 같아서 셈과 글씨쓰기 연습부터 시켰다. 2학기 과정의 수학책을 마스터시키고 구구단을 매일 스무 번씩 써서 달달 외우게 하였다. 방학 동안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한 결과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쓰던 아이가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고 받아쓰기와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학교생활도 잘 하려니 했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용진이의 공격적이고 산만한 성격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문제는 용진이가 부모님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친부모와 함께 생활하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어서 빨리 용진이가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제 수빈이는 기저귀도 떼고 혼자서 옷도 입으며 제법 말도 잘 한다.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나의 시간과 공간, 건강, 물질을 조금이나마 내가 아닌 남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내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보람도 아주 크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을 선구자로 시작한 수양부모협회 박영숙 회장님과 여러 선배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면 닮고 싶다. 정말 아름다운 생각과 실천으로 이웃의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인데 생활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했다. 나의 열매는 쭉정이인지 충실하게 맺혀진 열매로 이웃을 기쁘게 하는지 이 시간 조용히 내 삶을 되돌아본다.

사은숙 님은 파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였다. 퇴임 후 경기북부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수빈이와 준이를 위탁받아 늦둥이 기르는 재미와 보람으로 삶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남편은 물론이고 군복무 중인 아들과 중학교 선생님인 딸도 엄마의 일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수빈이의 꿈이라는 카페(cafe.daum.net/subindream)를 개설, 인터넷을 통해 친부모에게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운 마음을 녹여주고, 새 희망을 찾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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