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윤관(金剛般若波羅蜜經綸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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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윤관(金剛般若波羅蜜經綸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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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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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세계

이 『금강반야바라밀경윤관』은 함허득통이 금강경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금강경오가해』에서 여러 선인들의 견해를 열거하고 배열한 것과는 달리 함허가 여기에서는 금강경의 분과를 형식상으로는 10문으로 나누고 내용적으로는 상근기와 중근기와 하근기에 따른 것으로 정리를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금강경의 구조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함허득통(1376~1433년)은 법명이 기화(己和)이고 법호는 득통(得通)이며 당호는 함허당(涵虛堂)이다. 속성은 유(劉)씨로서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중원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성균관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였고, 21세(1396년)에 학우의 죽음을 보고 무상을 느껴 출가하여 수도할 것을 결심하였다. 출가한 곳은 관악산 의상암이었고, 이듬해(1397년)에 회암사로 가서 무학(1327~1405년)을 친견하고 법요를 들었다. 여러 산문을 유행하다가 29세에 다시 회암사에 돌아와서 용맹정진한 결과 깨친 바가 있었다.

31세 때는 공덕산 대승사로 가서 4년에 걸쳐 『반야경』 강설회를 세 번 열었다. 35세 때는 천마산 관음굴에서 현풍을 크게 떨쳤으며, 이듬해 불희사(佛禧寺)로 가서 3년결제를 하면서 가람을 키웠다. 39세 때는 자모산(慈母山) 인봉사(烟峰寺)에 작은 방을 정하고 이름을 함허당(涵虛堂)이라 하며 3년을 정진한 후에 이 절에서 2년에 걸쳐 『오가해(五家解)』 강석을 세 번 열었다. 56세 때 왕실에서 건립한 대자암(大慈庵)에 머물면서 왕비와 왕자의 천혼을 위한 영산법회에서 설법을 여러 번 했다. 4년 동안 대자암에서 주석(住錫)하다가 글을 올려 사퇴하고 산으로 들어가서 다시 운수(雲水)의 생애로 법을 폈다. 56세 되는 가을에 희양산 봉암사로 가서 퇴락한 절을 중수하였다. 사원의 중수를 마치고 58세 되는 해 4월 1일 입적하였다. 법랍은 38년이었다.

함허의 저술 및 어록 가운데 현존하는 것으로는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2권), 『금강바라밀경윤관(金剛波羅蜜經綸貫)』(1권), 『원각경해(圓覺經解)』(3권), 『영가집과주설의(永嘉集科註說誼)』(2권), 『현정론(顯正論)』(1권),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1권) 등이 있다.

夫金剛者 言簡意密 事周理圓 凡出世因緣 度生體裁 含攝無餘 於戱諸佛能事 一部盡之矣 經云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豈欺人哉 若使具眼者見之 一見便見無疑 若不具眼到此總須茫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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