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디 착한, 그러나 아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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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디 착한, 그러나 아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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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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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윤명란(44세)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무거운 마음이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과연 복은 지은 대로 오는 것인가?

윤명란 씨는 출생부터 평탄치 않았다. 신심(信心) 깊던 조부모님께서 매일같이 산을 2개나 넘어 절에 가서 천일기도를 하여 5년 만에 얻은 귀한 손녀딸이었다.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그 귀한 손녀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척추를 다쳐서 나왔다고 해요. 전신이 마비돼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고 하네요. 부모님과 조부모님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 병을 고치려고 무진장 애를 쓰셨어요. 다행히 제가 7살 때 용한 침술사를 만나 걸을 수는 있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지요. 제 병을 고치느라 부모님께서 운영하던 미용실과 제과점을 처분해 가산이 탕진되었습니다.”

윤명란 씨는 현재 지체 4급 장애인으로 오른 다리를 심하게 절어 걸음이 많이 불편하다. 자신의 몸이 불편해서였을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애잔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에 불교자원봉사연합회를 알게 되어, 연고자 없는 환자들을 돌보거나 고아원 아이들을 보살피는 등 봉사활동을 하며 삶의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육체적인 봉사활동은 몸이 온전치 않으니 마음과 달리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방생선원 성덕 스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워, 신도들에게 찬불가를 가르치고 법회 때 반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절에 오는 분들의 숫자가 2배, 3배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86년 결혼을 하게 되었고, 연년생으로 남매를 두었다. 아이들 키우느라 다른 일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해 다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 때는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불교소식지나 잡지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썼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그 분들 입장이 되어버렸네요. 기분이 참 묘해요. 그 분들도 지금 제 기분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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