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누이야.
얼마나 오랜만에 내 맘속에 따뜻이 담아보는 말인지 모르겠구나. 극히 사소한 일로 너와 그렇게 크게 다투고 난 지난 몇 년 동안, 사실 나는 너만 생각하면 단 하루도 신간이 편치 않았다.
정말이지, 가까운 사람이 주는 아픔과 배신감일수록 더욱 크고 깊더구나. 남이었으면 진작에 잊혀지고 지워졌을 일이 아직도 내 맘 속 깊은 곳에 크나큰 고통의 응어리로 고여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그 때 너와 내가 한 핏줄만 아니었다면 그만한 일로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도록 싸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설령 그 일이 그렇게 막중하고 지대한 일이었다고 해도 손 위인 내가 조금만 더 넓고, 깊고, 느리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절연까지 가는 다툼은 없었을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그게 다 내 아집과 자존심과 탐심이 빚어낸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아픔의 부메랑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때 그 상황에선 너는 네가 최선이었고, 나는 내가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우린 그 때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최선임을 주장하면서 어리석게도 천륜마저 어기려고 한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단 해밀턴의 『용서』라는 책자는 나에게 그 같은 자각을 더욱 깊이 심어주었다. 단 해밀턴은 그 소책자에서 S. I. 맥밀란이라는 의사의 말을 인용해 “어떤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의 노예가 되고 만다.… 나의 마음을 꽉 틀어쥐고 있는 그 강압적인 손길로부터 피할 도리가 없다. 음식점 종업원이 내 앞에 큼직한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갖다 놓을 때에도… 그것은 다 말라비틀어진 빵과 물밖에 없는 식사와 별반 다를 게 없게 된다.… 미움을 받고 있는 그 사람은 내가 그 맛을 즐기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해밀턴은 “미움은 마치 부메랑과 같다. 미움은 제 자리로 돌아오면서 처음에 표적으로 삼았던 사람 대신 우리들 자신에게로 와서 꽂힌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악영향을 미치는 소행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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