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갈 길은 어디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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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갈 길은 어디로 2
  • 관리자
  • 승인 200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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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석/관응 스님

생명의 본질을 깨달으면 고생이 떨어진다

부처님께서 해인삼매의 경지를 증득해서 아신 것은 일체 중생이 하나라는 겁니다. 그리고 깨기만 하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부처님 말씀을 곧이 듣지 않습니다. 반야심경도 곧이 듣지 않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없다고 하는데도 눈에 팔리고 귀에 팔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이 하는 얘기도 거짓말로 알아요.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만 해도 물에 빠져도 안 죽고 불에도 안 탄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불에 들어가면 타는데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안 탄다는 경전 말씀을 그저 옛날 이야기로 여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드리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꾸며낸 얘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 증거가 있습니다.

어쨌든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일체 중생의 인과 응보가 한꺼번에 보이고, 일체 무정의 기세간, 일체 부처님 세계가 보이는데, 일체 중생이 다 하나라는 얘기를 내가 팔십이 넘도록 강조해도 알아듣는 이가 없어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심리학에서 하는 소리인데, 이 세상에는 동물도 많이 있고 곤충도 많이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 중에는 너댓 살 먹은 어린애가 커다란 황소를 몰고 가는 일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요즘에도 인도에 가면 큰 코끼리가 댓 살 먹은 어린애에게 끌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황소나 코끼리가 몸뚱이는 크지만 아는 정도, 지식의 정도가 어린애보다 낮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또 감각만 가지고 얘기해도, 이 몸뚱이에도 감각하지 못하는 곳이 있어요. 뼈, 손톱, 머리털 등은 톱으로 썰어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감각 있는 곤충만 가지고 얘기하더라도 어떤 것은 전면만 보지 측면은 못 보는 곤충이 있습니다. 이런 곤충을 1차원에 사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2차원, 3차원의 세계는 모릅니다. 또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가 내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알지도 못하면서 몸뚱이가 백년은 살겠지 하면서 그냥 사는 겁니다. 우리 산다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숨쉬다가 나가던 숨이 안 나오고 들어가던 숨이 안 들어가면 죽는 겁니다. 이 몸뚱이는 생명이 아닙니다. 눈이 보는 게 아니고, 심장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다고 말하지 눈이 본다 귀가 듣는다고 하지 않잖아요. 눈이 본다고 하면 죽은 사람도 눈이 있으니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또 살다가 죽으니까 홀연히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내생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겁니다. 공자 같은 이도 내생은 몰랐어요. 하지만 부처님은 생명을 깨신 분입니다. 우물 속 개구리에게 태평양 얘기를 하면 모르듯이 부처님은 도솔천을 떠나지 않고 이미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나 중생제도를 마쳤다는 얘기를 아무리 해도 사람들은 그 소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한 일체 중생의 생명이 하나라는 부처님 말씀도 믿지 않고 제각각 이 몸뚱이를 자기로 알고 사는 겁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생명의 이치를 깨달아 이 몸뚱이가 내 생명이 아니요, 일체 중생의 생명이 하나라는 이치를 안다면 저절로 고생이 떨어져나가고 지극하고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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