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불란(一心不亂), 극락정토 왕생의 대문(大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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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불란(一心不亂), 극락정토 왕생의 대문(大門)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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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오선사 어록

한 구절 ‘아미타불(阿彌陀佛)’ 성호(聖號)는 낫지 못하는 병이 없는 만병통치약〔阿伽陀藥〕이고, 만족시키지 못하는 소원이 없는 여의주의 왕(如意珠王)이며, 건지지 못하는 고통이 없는 생사고해의 자비로운 항공모함이고, 깨뜨리지 못하는 어둠이 없는 기나긴 한밤중의 지혜로운 등불입니다.

단지 한번 귓가에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 있는 것이며, 단지 한 생각 믿음의 마음을 낼 수만 있어도 곧바로 감응을 일으킬 것이며, 신심이 과연 진실하다면 극락왕생의 서원은 굳이 발하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발해집니다.

따라서 단지 믿음과 발원이라는 이 두 법만 항상 마음에 간직해 두면 됩니다. 마치 충신이 성왕(聖王)의 은밀한 교지(敎旨)를 받들듯이, 효자가 자부(慈父)의 엄명을 받들듯이, 그렇게 마음에 항상 새겨 간직하고 잊지 않는 것이, 염불에서 최고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수시로 처하는 환경이 고요하거나 시끄럽거나 한가하거나 바쁘거나를 막론하고, 또 많이 염불하거나 적게 염불하거나 가리지 않고, 이 모두가 다 극락왕생의 기본원인〔正因〕이 됩니다. 단지 두려워하고 경계할 일은 부지런함 속에 게으름이 끼어드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들이 시작도 없는 기나긴 겁의 세월 동안 윤회를 되풀이해 오면서, 어찌 그 윤회를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진리〔道〕를 향한 수행이 전혀 없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구태의연한 인순(因循)에 그 믿음(마음)이 사그라지고, 미적거리는 게으름에 그 발원(열정)이 식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생사윤회를 헤매면서 크나큰 고뇌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미타불’ 명호를 지송하는 간단명료하고 요긴한 염불법문을 알아들었는데도, 또다시 구태의연한 인순과 미적거리는 게으름 속에 안일하고 주저하는 전생의 전철을 되풀이할 것입니까? 만약 정말로 그런다면, 혈기라곤 조금도 없는 최고 제일의 한심한 녀석이라 불러 마땅할 것입니다.

이른바 ‘부처님 명호를 꼭 붙들어 지닌다’는 ‘집지명호(執持名號)’란 바로 중용에서 말한 대로 “두 손으로 꼬옥 받들어 가슴에 새기고 지키는〔拳拳服膺〕” 걸 가리키며, 마음에 굳게 새기고 지녀 잠시도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혹시 조금이나마 한 생각이라도 끊어진다면 ‘집지(執持)’가 아니며, 또는 조금이나마 한 생각이라도 끼어들거나 섞인다면 또한 ‘집지(執持)’가 아닙니다. 한 생각도 끼어들거나 끊어짐 없이 생각생각 계속 이어져야〔念念相續〕 비로소 진실한 정진입니다.

그렇게 정진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점차 한 마음 흐트러지지 않는 ‘일심불난(一心不亂)’의 경지에 들어 청정한 업〔淨業: 정토왕생의 수행〕이 원만히 이루어집니다. 만약 일심불란에 이르러서도 다시 계속해서 끊임없이 정진한다면, 장차 지혜가 열리고 변재(辯才)가 터지며 신통을 얻고, 나아가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이루어 온갖 기이한 영험과 상서로운 조짐들이 두루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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