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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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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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고향

고향은 파란 대문집, 버드나무집, 수연 할아버지네 등 외형의 특색만 알면 그 둘레까지 다 알 수 있는 그런 편리한 곳이었다. 하긴 그 시절 마을이란 거반 그런 식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몇 단지, 몇 동, 몇 호 하면서 수용소처럼 한결같은 네모 건물, 네모 창, 네모 엘리베이터에 몸을 담고 왔다 갔다 하니, 고향의 이미지로 모두 네모 꼴로 시작하고 마감되니, ‘할 수 없지’ 하고 웃고만 넘길 일일까.

그런 저런 생각으로 오산에 사는 재형(초6), 재용(초4), 지현 손자 셋을 방학이라 서울에 오게 하였다. 일단 경복궁, 월드컵 경기장 등을 보여주고 나서, ‘오늘부터 공부야’ 명령한 다음 고속터미널에 있는 맘모스서점 영풍문고로 데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동서적 코너에 꽤 많은 어린이들이 빽빽하게 그러나 자유스럽게 앉아 저마다 숨소리도 죽인듯 제법 진지한 얼굴로 독서 삼매에 빠져 있지 않는가.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고 믿음 직스럽고 사랑스러운지…. 서울 한 구석에 이렇게 좋은 장면이 있다는 것에, 어떤 사회적 감동과 행복을 느꼈다고 하면 시체말로 ‘오버’일까.

바다의 물고기들이 3%의 염분 때문에 썩지 않고 삶을 영위하듯 아침저녁 험한 사건 보도로만 점철되어 있는 오늘날, 영리 계산을 떠나 이 쾌적한 공간과 책을 제공하는 이집 주인은 누구일까. 그가 너무 고마워서, 내가 볼 책이라도 돈을 치르고 사야지 싶어 몇 권을 고르며 마치 답례하고 안심한 심정인 것에 그만 혼자 웃었다.

저 아이들이 더 커서 자기 재량으로 책을 살 수 있을 때, 또 어른이 되어 때론 이곳에 와서 책을 고르며 어린 시절 진종일 죽치고 앉아 공짜로 책 읽은 생각을 하고 그리움과 웃음이 잔잔한 물결이 되어 가슴에 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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