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봄의 소리
상태바
사라져가는 봄의 소리
  • 관리자
  • 승인 2007.10.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혜의 향기/봄이 오는 소리

푸른 산 맑은 물이 좋아서 이곳 남양주 북한강변에 삶의 둥지를 튼 지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환경파괴 소식은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밤을 세워가며 진정서를 작성하고 상급기관에 제출할 민원 발송문을 만드느라 고심했던 추운 겨울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무참히 잘려져 나간 울창한 숲과 날로 오염된 강물을 바라보면 한없이 마음이 아프고 하염없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매년 새해가 밝아오면 맨 먼저 굴참나무 가지 위에서 떼지어 앉아 새해 덕담을 나누고 처음 봄소식을 전하던 까치들의 정겨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답답해지고 갑갑해져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속수무책이라고 하던가? 발만 동동 구르다 이내 지쳐 바쁜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내가 너무 부끄럽고 미워진다. 하지만 어쩌랴! 그 동안 정들었던 굴참나무 위의 까치집은 무참히 베어진 채 어디론가 실려나갔고 그 자리엔 무지막지한 불도저와 굴착기가 쉴새없이 굉음을 내며 산마루를 깎아 실어 나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나 보다.
꽁꽁 언 대지 위에 햇살의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고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 가지 마디에도 촉촉한 물기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귓전에 맴도는 환청의 언저리에는 아직도 눈보라 몰아치는 삭풍의 윙윙거림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한다. 밤이 깊어지면 이곳 북한강변에는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짙은 물안개로 적막강산이 된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여울 여울을 휘돌아 산등성이로 물안개가 되어 피어오르고, 강물의 물안개는 난개발로 무참히 잘려나간 강변의 산기슭을 애써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죽은 넋을 달래는 살풀이 춤을 추기라도 하듯, 어지럽게 머리를 풀어헤친 채 더욱 짙은 안개로 강과 산을 온통 하나로 뒤덮는다. 강변의 산책로에는 지척의 물체를 분간하기 어렵고 자동차가 다니는 포장도로조차 길 옆 가로등을 무색케할 정도로 깜깜한 밤이다.
밤은 깊어가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온갖 상념은 복잡한 실타래만큼이나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길 가는 길손들의 길라잡이, 말동무나 되자고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우동 만들기는 걸음마 단계에 이른 어린아이쯤 될 것이다.
이제 제법 우동다운 우동을 먹을 수 있다는 단골손님들의 핀잔 섞인 칭찬을 들을 때 피식 웃음도 나오지만 결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한 그릇의 제대로 된 우동을 만들기 위해 지하 110미터 깊이의 천연 암반수를 퍼올리고, 맛있는 멸치와 다시마를 찾아 남해안 일대를 헤매였던 그 날들이 결코 헛된 수고가 아니었음을 생각할 때 가슴 뭉클해 오지만 늘 처음 시작하는 마음과 자세로 임하는 것이 모든 음식에 대한 나의 믿음이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오늘,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순간 환청처럼 귓전을 맴도는 소리는 아직도 내 곁을 떠나지 못하는 까치의 애절한 울음소리이다.
‘늘 열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이라고 다짐하는 순간 어디선가 칼갈이 아저씨의 부지런한 고함소리가 어느 때보다 큰소리로 들려온다. “칼 갈아요 칼, 칼 갈아요 칼. 모든 음식 맛은 제대로 된 칼맛에서 나옵니다.” 아무래도 이번 봄이 오는 소리는 이걸로 대신해야 할 것 같다.

김경선 님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양영학원, 정진학원에서 10여 년간 근무하였다. 지금은 ‘푸른 남양주 실천협의회’ 대표로 활동하며, 1998년부터 경춘가도에서 ‘어우돈’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