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자(母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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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자(母子) 이야기
  • 관리자
  • 승인 200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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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최근 이혼율이 30%를 넘어선다고 한다. 세 쌍 중 한 쌍이 갈라선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장미빛 미래를 약속한 부부가 헤어지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은주 씨(39세)는 남편과의 연애 끝에 20대 초반에 결혼을 했다. 어렵게 성장한 두 사람은 열심히 일했고 알뜰하게 살림을 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남편은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 두고 ‘청소년 오락실’을 인수했다. 젊음 하나만 믿고 벌인 일이었기에 불안했지만 의외로 장사가 잘 되었다.

“정말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장사했어요. 오락실에 이어 레스토랑을 했는데,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더라구요. 10년 전에 한 달에 5∼6백만원씩 벌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도 한 순간이더라구요. 그렇게 모은 돈을 6개월 만에 몽땅 까먹었거든요.”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그토록 성실하던 남편에게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아지고 외박이 잦았다. 노름에 손을 댄 것이다. 한 번 빗나가기 시작한 남편은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졌다. 아내 몰래 돈을 융통하다보니 사채를 쓰게 되었고, 급기야 레스토랑을 처분하게 되었다. 재기를 노리면서 자동차 중개업에 뛰어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은 처참하게 이들을 외면해 버렸다.

자꾸 거짓말만 하고 불성실해진 남편에게 더 이상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 때 남편을 정신 차리게 하려고 극약처방으로 이혼을 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았는지 남편은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다. ‘이젠 됐다’ 싶어 다시 호적을 합치고 둘째를 낳았다. 그러나 남편이 또다시 노름에 빠지면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결국 은행 빚과 두 아이를 떠안고 두 번째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장은주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비교적 시간이 나는 보험 설계사 일을 시작했지만 실적이 없으니 수입 또한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초등학생인 큰애에게 둘째를 맡기고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니 아이들과 눈 마주칠 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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