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노니 주인공아! 어느 것이 참나이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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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노니 주인공아! 어느 것이 참나이런고?
  • 관리자
  • 승인 200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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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이 만난 사람|/선도회 박영재(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물오른 가지마다 피어오른 연두빛 새싹들과 망울망울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이른 아침 신선한 기운과 함께 퍽이나 잘 어우러진 서강대학교 교정.
오늘은 선도회(禪道會) 서강대 모임인 견주굴(見主窟, 주인공 혹은 천주님을 친견하는 곳) 모임(매주 화요일 오전 7시, 서강대학교 내 성당 기도실)이 있는 날이다.
혹여나 늦을 새라 일찍 도착해 기도실을 물으니 ‘아! 화요모임에 오신 분이신가요?’하며 2층을 가리킨다. 둥그런 온돌방으로 꾸며진 성당의 2층 기도실에는 빙 둘러 방석이 놓여져 있고 일찍 오신 몇 몇 분은 이미 좌선삼매에 들었다. 지도법사인 법경(法境) 박영재 교수를 비롯하여 10여분의 회원들이 말없이 좌선에 든 지 30분이 지났을까.
‘탁! 탁! 탁!’ 죽비소리와 함께 지도법사인 박영재(48세) 교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 아래층에 있는 교목처세미나실로 내려가자 한 사람씩 차례대로 입실(入室, 제자가 일대일 단독으로 그 동안 수행한 경계를 스승께 제시하는 간화선의 전통), 한 주 동안 참구한 화두의 경계를 제시한다. 입실하기 위해 기다리는 회원들의 표정이 마치 고사장에 들어가는 고3학생마냥 비장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말들이 오가는 것일까. 들여다봐서도 안 되고 엿들어서도 안 된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에 자신의 공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입실의 과정을 거친 듯 마지막으로 나의 입실(?) 차례가 되었다.
“오늘 취재 차 오셨지만 우선 앉는 자세와 수식관(數息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주앉은 기자에게 처음 참선하러 온 사람에게 일러주듯 아주 자상하게 앉는 자세며 손놓는 법, 그리고 호흡과 함께 “하나 두-울 세-엣… 여얼, 하나 둘…” 들숨과 날숨이 드나들 대마다 수를 헤아리는 법을 친절하게 일러주신다. 철저한 수식관을 통해 일체 잡념이 끊어졌을 때 화두를 들어야 제대로 참구가 되는 것이기에 신참자들에게는 우선 앉는 자세와 수식관을 일러준다는 것이다.
입실이 끝나자 다시 2층 기도실에 자리를 함께 한 교수는 스승인 종달(宗達) 이희익 노사께서 제창한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의 『무문관(無門關)』 48측 중 24측을 강설한다.
무문관 강설이 끝난 시간은 8시 10분 경. 죽비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회원들은 학생식당에서 간단하게 국수공양을 하고 밝은 웃음과 함께 각자의 연구실로 향한다. 박영재 교수의 전공이 물리학이어서인지 서강대모임에는 생명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수학과, 화공과 등 이공계 교수들이 많다.
선도회 서강대모임은 1994년 2월 평소 참선에 관심 있었던 교수들의 요청으로 박영재 교수가 참선을 지도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같은 해 3월부터 서강대학교 교목실의 호의로 성당 기도실을 빌려 모임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처음 공부를 시작한 네 명의 교수를 비롯하여 현재 20여 명의 회원(신부님과 수녀님, 서강대 교직원, 교수, 직장인, 학생 등)이 매주 화요일 모임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에는 수학과 천흠(天欽) 박성호 교수가 무문관을 통과해 인가를 받았다. 머지 않아 박영재 교수를 이어 서강대 모임을 이끌어가게 될 선도회의 법사가 된 것이다.
“흔히들 간화선을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발심해서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꾸준히 입실만 하면 누구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입실지도가 제대로 갖춰지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지요. 간화선만큼 빨리, 그리고 간결하게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도 없을 것입니다. 화두를 참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스승에게 입실해 그 동안의 경계를 제시해야 합니다. 제시한 경계가 맞고 틀리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지요.”
입실지도는 제자가 스승과 일대일로 만나 끊임없이 수행력을 점검받는 것이다. 화두공부를 하는 데 진척이 없다면 이는 전적으로 스승의 잘못이며, 간화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입실지도를 해줄 눈밝은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스승은 어미닭이 간절한 마음으로 알을 품고 있다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순간 껍질을 쪼아주듯이 수행이 무르익어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자를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달 노사께서는 1965년 재가수행모임인 선도회를 조직하신 후 1990년 입적하시기 전까지 한 평생 문하생들에게 석가세존과 역대조사들의 종지(宗旨)를 온전히 드러내시고 입실을 통해 바른 경계가 설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시면서 선도회 문하생들을 철저히 점검하셨습니다. 입적하시기 전 거동이 어려우실 때에도 누워서 입실을 받으셨어요.”
‘하루 향 한 대 타는 시간 앉지 않으면 한 끼 굶는다.’ 이것은 선도회의 수행가풍이다.
선도회 회원들은 이른 새벽 한 시간, 그리고 잠들기 전 한 시간 앉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벽암록으로 유명한 원오극근 선사의 좌일주칠(坐一走七) 정신과도 일치하는 이 가풍은 우리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깨어있는 시간 가운데 팔분의 일인 두 시간 정도 좌선을 하면 팔분의 칠은 각자의 본업에 철저히 매진,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놀랄 만한 성취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영재 교수 또한 1975년 10월 노사 문하에 입문해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시간,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직전 1시간 좌선을 통한 간화선 수행을 지속한 결과 10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가슴에 맺혔던 모든 의심이 일시에 사라지고 늘 있는 그 자리에서 구성원들과 더불어 함께 주어진 일에 거의 100%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밝고 진지하며 누구에게나 친절하면서도 문하생들을 제접함에 있어서는 힘차고 박력있는 지도력으로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법경 박영재 교수가 불교와 인연을 갖고 선공부를 시작한 것은 1975년 대학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딸 다섯을 둔 집안의 2대 독자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탓인지 버스를 탔을 때 옆자리에 여학생이 앉으면 내릴 때까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매우 내성적인데다가 성격도 예민했다.
서강대 물리학과를 1등으로 입학했지만 인생과 학문과 바뀐 대학 분위기 속에서 방황하던 중 법정 스님이 번역하신 『숫타니파타』를 보고 너무나 인간답게 살아간 인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을 확고히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강과 더불어 서강대 불교학생회에 가입, 선배의 인도로 종달 이희익 노사를 만나 선수행을 시작하면서 삶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나름대로 삶의 의미가 주어졌다. 선수행은 참으로 졸장부가 대장부가 되는 길이었다.
선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 이제는 외로움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없어졌을 무렵 의사이셨던 아버님이 취업 차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갔고, 5년간 홀로 남아 독거생활이 시작되면서 참선수행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학업에 매진하는 한편 잠자리에서 깨어나 한 시간,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시간, 그리고 주말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앉았다.
하루하루가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없었으나 하루하루가 끊어져 지나가던 것이 이어져 흘러갔으며 하루하루, 아니 순간 순간이 새로웠고 하루의 중심이 잘 잡혀갔다. 1987년 무자 화두를 통과하고 무문관 48측을 통과 드디어 종달 노사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인가란 박사학위와 같은 의미로 스승의 도움 없이도 수행을 제대로 해갈 수 있다는 것이고 혼자서도 제자를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요. 어느 누구라도 발심하여 1년쯤 제대로 앉으면 자리가 잡히고 한 3년쯤 앉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앉게 됩니다. 누구나 꾸준히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천하를 활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구도의 열정을 갖고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지도할 생각이라는 박영재 교수.
법 앞에는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가 없는 것이며, 잘못됐으면 과감히 시인하고 백의종군하는 마음자세로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문하생들을 제접하는 가운데 수행의 폭과 깊이가 더해진다며 소년 같은 환한 웃음을 웃는다.

박영재 교수님은 1955년 경주에서 출생.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이론물리학(입자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미국 뉴욕 주립대(스토니부룩)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외국 학술지에 90편, 국내 학술지에 26편의 연구 논문을 게재, 6편의 번역서가 있다. 1975년 종달 이희익 노사께 입문 후 1987년 무문관 과정을 모두 마쳤으며, 1990년 종달 노사 입적 후 선도회 제2대 지도법사로 목동 모임과 서강대 모임을 이끌고 계시다. 저서에 재가자들을 위한 참선 지침서인 [두문을 동시에 투과한다]와 {이른 아침 잠깐 앚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리네}가 있다. 요즈음은 회원들의 해외근무나 직장 이동 등 부득이 입실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서신과 전자메일로도 입실지도를 하고있다.
선도회 모임 안내
- 목동모임: 첫째 셋째 일요일 오전 7시 30분, 전화 02-658-6090
- 서강대모임: 매주 화요일 오전 7시, 성당 기도실
- 정릉모임: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삼보선원, 전화 02-913-3746
- 광주모임: 전화 011-619-1346
- 인천모임: 전화 011-741-0132
- 대전모임: 전화 016-444-0734
- 춘천모임: 전화 033-262-5245

무자 화두를 타파해 법호를 받은 회원은 현재 80여 명에 이르며, 무문관을 끝까지 투과해 인가를 받고 법사 자격을 갖춘 사람은 15명(10명은 종달 노사로부터 인가, 5명은 박영재 교수로부터 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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