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윤회설의 성립과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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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윤회설의 성립과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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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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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강좌 26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보면 좀 상반된 설명을 필요로 하는 두 가지 영역이나 경우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한 쪽의 세계에는 철저하게 육근의 의지적 활동이 전제된 거죠. 그와 같은 육근의 의지적 활동 자체를 삼종외도설로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업인과보를 택하면 첫 번째(성실한 사람이 잘 산다) 경우는 설명이 되는데, 두 번째(열심히 살아도 궁핍하게 산다) 경우는 설명이 잘 안 됩니다. 그렇다고 삼종외도를 택하게 되면 이번에는 두 번째는 설명이 되는 것 같은데 첫 번째가 설명이 안 됩니다.

논리가 그렇게 전개되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 될까요. 저 12처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원리를 우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데, 업인과보라는 원리에 입각하거나, 삼종외도설에 입각하거나 완벽한 설명을 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세 번째 견해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일종의 절충안입니다.

즉 첫 번째 경우는 업인과보로써 설명을 하고 두 번째 경우는 삼종외도로 설명하자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하나의 영역은 업인과보의 법칙에 입각해서 이해를 하고, 또 하나의 영역은 유신론이든 숙명론이든 우연론이든 그런 법칙 중 어느 하나에 입각해서 이해를 한번 해 보자는 겁니다. 절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조그만 사업이나 가정의 문제는 업인과보의 법칙에 입각합니다.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업인과보의 법칙에 입각하여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립니다. 그런데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에도 운이 따라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부분은 자신의 운이라는 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느 범위까지는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가 있되 그 범위가 넘어나면 자기의 의지가 안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어느 사이 갖게 됩니다. 특히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는 관념구조의 특징입니다. 기독교인의 경우는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하죠.

대개의 한국인들은 불교적인 사고, 기독교적 사고, 또 불교 안에서도 숙명론적인 사고를 혼합해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은 일들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업인과보의 법칙에 입각하지만 큰 일에는 운명, 신, 초월적인 어떤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유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업인과보 또는 삼종외도 또는 절충론 등 이 세 가지 중에 진리가 있습니까? 불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찾아 나가는 구도 행각이 불교일 겁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란 모든 곳에 적용이 되어야 하겠죠. 여기에 모든 곳에 적용이 되는 원리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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