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 시절의 눈으로 보는 바미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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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 시절의 눈으로 보는 바미얀의 비극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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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초발심

무슨 일을 하든 누구든지 처음 품은 마음을 시종일관 지켜간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이고 보면 초발심을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자주 초발심의 긴요함을 강조하시고 만 가지 일을 오직 하나로 단단하게 뭉쳐서 타개해나가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의 정신을 강조했다. 운문문언 선사의 제자에 향림징원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스승이신 운문 선사는 영민하지 못한 제자를 어떻게든 깨우쳐주고자 18년간 매일 “원(遠)수좌!” 하고 부르고 제자가 대답하면, “그게 무언가?”라고 물었고 어느 날 제자는 스승의 질문 끝에 문득 견성하여 큰 선지식이 되었다. 40년 후 향림징원 선사는 “나의 인생은 40년간 오직 타성일편의 세월이었다.”라는 회상을 남기고 80세의 나이로 입적한다.

타성일편이란 오직 하나의 본래면목을 깨닫기 위해 만사를 하나로 뭉친다는 것이다. 향림 스님은 영민하지는 않았지만 40년 동안 정념(正念)을 가지고 만사를 하나로 뭉치는 초발심을 시종일관 지켰던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수행자에게는 바로 이와 같은 ‘40년 동안의 타성일편(四十年來打成一片)’의 정신이 필요하다.

부처님의 크신 은덕을 입고서도 매사에 어둡기만 한 수행자로서 살아온 나의 초발심을 돌이켜보면 그 중심에는 언제나 거울 같으신 은사스님(경산 큰스님)이 계시다.

돌아가신 경산(慶山) 큰스님께서는 1917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나셔서 17세 되던 해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하시고 마하연 선원과 상원사, 범어사, 정혜사 등 제방의 선원에서 수행하시고 1956년부터 조계종 정화불사에 진력하신 뒤 총무원장과 십 년간 동국대 이사장 소임을 맡으신 근대 조계종의 큰스님이시다.

스님께서 총무원장 소임을 끝내신 어느 해 겨울 적조암에 머무실 때의 일이다. 나는 그 때 적조암의 살림을 맡은 암주(庵主) 소임을 보고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이 가득 차서 모두가 불편하게 여겼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신 스님께서는 그 특유의 함경도 사투리로 “오늘은 변소를 치자 야”라고 말씀하시며 손수 소매를 걷고 나서셨다. 어렵사리 변소를 치운 뒤 스님이 앞에서 매고 뒤에서 내가 들고 가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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