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판자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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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판자촌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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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겨울 , 판자촌올 겨울 새해 벽두부터 20년 만의 폭설이 내리고, 십수 년 만의 강추위가 한반도를 덮쳤다.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아버린 듯한 동장군의 서릿발 같은 기운은 실로 매서웠다. 이에 맞서 아직 연탄만으로 한파를 견뎌내는 곳이 있다.

서울의 끝자락, 의정부와의 경계에 위치한 상계동을 찾았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너머로 동쪽으론 삼각산, 서쪽으론 도봉산이 아름다운 겨울 설산(雪山)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멀리 산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자 이내 입김만 불어도 허물어질 듯한 빈촌이 옹색하게 드러난다.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이리저리 뒤얽힌 골목을 돌고 돌아, 올해 환갑을 맞는 김만고(61세) 할머니 집에 들어섰다. 연탄 가스 냄새가 확 끼쳐왔다. 너댓 평의 단칸방엔 누렇게 뜬 벽지가 너덜거리고 햇빛마저 들지 않아 몹시도 음침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이 딴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간 후, 29살 때부터 어린 5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웠다. 참으로 무심한 남편이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일절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최근에서야 나타나 이혼을 요구하고 나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애들 다섯과 함께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생각해보니 막막합디다. 그 때 떠오르는 분이 부처님이었어요. 처녀 시절 부산 범어사 산내 암자에서 비구니스님 시봉을 하면서 지냈던 적이 있었거든요. 사찰의 공양주보살을 하면서 아이들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요. 새벽녘에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절에 갈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이 못난 에미를 만나서 저 고생을 하나 싶어 어찌나 측은하고 불쌍하던지….”

그 동안 남편 대신으로 의지하고 믿었던 하나뿐인 아들이 5년 전 교통사고로 당시 3살이던 현진(8세)이와 백일도 안 된 성솔(6세)이를 남겨두고 사망했다. 식당을 개업하면서 이제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고 동분서주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어른거린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이 풍비박산이었다. 아들의 교통사고 치료비와 피해자 보상금뿐 아니라 식당을 차리면서 냈던 빚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게다가 딸들마저 서로서로 맞보증을 하여 현재는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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