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벳학의 처녀지를 개척한 열린 마음의 탐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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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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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동한 밀교의 여성들4/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

두 번의 밀입국

1916년 6월 유럽에서는 1차 대전이 한창 소용돌이 치고 있을 때 알렉산드라는 시킴과 티벳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가 버렸다. 신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 놓고 죽고 살기로 싸움질을 하는 그 제약의 선을 농담처럼 가볍게 넘어갔던 것이다.

그렇게도 소망하던 티벳 땅으로 들어서자 알렉산드라는 유럽의 옷을 벗고 티벳 비구니의 승복을 입었다. 선이 아름다운 노란색 승모도 썼다. “이 동양의 옷이 어쩌면 이렇게도 편하게 느껴지는가? 내 속으로 분명히 동양인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라고 했다. 티벳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시가체의 최대 승원, 따시룽포사로 가서 빤첸라마에게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빤첸라마와 빤첸라마의 어머니는 머물고 싶다면 시가체에 얼마든지 오래 머물러도 좋다고 했다. 덕과 학식이 높은 고승들을 만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때를 회상하며 “내 마음은 천국에라도 온 듯이 기뻤다. 나는 정말이지 유럽을 잊어버리고 영원히 그 곳에 살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속해왔던 무리 집단은 한 이단자의 이탈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가 허가없이 시킴의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밀고받은 시킴 주재 영국 공사로부터 불호령이 내려왔다. 몹시 화가 난 찰스 벨 경은 2주 안에 티벳 국경을 넘어서어 다즐링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인도에서 영원히 강제 추방해 버리겠다고 했다.

승려들에게 극진한 환영을 받으면서 야만인들과 깊게 어울려 돌아가는 그녀의 비 크리스찬적인 행위에 심사가 뒤틀린 시가체의 선교사들이 밀고를 했던 것이었다. 영국 공사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기를 통과 시켰다는 죄명으로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영국 관리들에게 엄청난 벌금을 강요당하며 시달리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티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몹시도 낙심해서 1917년 초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49세) 이 서양 여자는 고향도 아닌 곳을 향해 짙은 향수병을 앓았다.

남편에게 쓴 편지에 “외지고 인적없는 고원의 광활한 평원과 깊고 푸른 하늘과 그 하늘 가로 드리워진 만년설들이 목마르게 그립습니다”라고 했다. 그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고 그해 10월에 다시 북경으로 갔다. 거기서 비밀리에 중국쪽 국경을 넘어 티벳의 수도 라싸로 들어갈 계획을 추진했다.

이번에는 여정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시켰다. 그녀와 욘텐 린포체가 동부 티벳, 암도의 유명한 절 꿈붐사(寺)에 도착한 것은 다음해 봄이었다. 암도의 절에서 3년을 살았는데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하고 그 곳의 학자들과 만나 공부를 하고 경전을 번역하였다. 남편 필립은 그 때까지 계속 여행 경비를 조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치른 후라서 넉넉한 돈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극도로 절약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싸를 향해 다시 여행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처음으로 남편이 반대를 했다. 머물러 사는 것보다 여행하는 것이 돈이 더 적게 든다고 설득했지만 남편은 끝까지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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