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光德) 스님/노자(路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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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光德) 스님/노자(路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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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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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그늘

광덕 스님이 감기가 심해서 누워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서 차일피일하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기장포교당에 갔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이 어지간한 곳이면 전화가 있어서 서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산골에는 반드시 사람이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하는 때였다. 흔히 풍문(風聞)에 소식을 듣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 때는 그야말로 바람결에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바람결에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우선 소식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그런데 절에서 절로 전해지는 소식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날도 노전(爐殿)의 노스님이 평탄한 길로 가면 10리,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넘으면 5리나 되는 길을 우정 오셔서 소식을 전해 주셨다.

소식을 듣고서 차일피일한 것은 굳이 변명 삼아서 이야기한다면 내가 사는 천성산에서 동래를 거쳐 기장에 갔다가 되돌아 오는 노정(路程)이 하룻길이 빠듯해서 바삐 서둘러 오고 가야하는 것이 싫었으므로 하루 이틀을 기장에서 머무를 생각이었기에 그 하루나 이틀을 버는 궁리를 하느라고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내가 사는 토굴에는 불공을 드리려고 쌀을 이고 오는 신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후원하는 신도가 있어서 먹고 살 만큼 보시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나에게 그만한 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루 한 끼가 기약이 없는 때도 있었다.

토굴에 들어가 정진하는 내 또래의 젊은 수좌들은 대부분 토굴에 들어가기 전에 토굴에 사는 동안에 필요한 식량 등을 미리 준비하고 들어갔다. 대개는 은사스님이나 도반을 비롯해서 법랍이 높은 스님이 토굴에 들어가 정진하는 젊은 스님에 대한 기대에서 도와주었다. 그것은 그만큼 촉망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촉망받을 만한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또 도와달라고 손을 벌릴 비위도 없었다. 그러니 양도(糧道)가 막막한 토굴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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