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스님/조달(調達)거사와 무명화(無明華)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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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스님/조달(調達)거사와 무명화(無明華) 보살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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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그늘

산사(山寺)의 해는 여름에도 일찍 진다. 골짜기의 산그늘이 짙어진다 싶으면 절은 어느덧 어둠에 싸이기 시작하고 산에 왔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대웅전 앞을 서성거리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수상쩍게 생각하였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 그를 후원으로 데리고 가서 저녁을 먹이고 처소로 와서 이 늦은 시각에 절에 온 이유 등, 이것 저것 캐물었으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방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대답은 겨우 그가 영천 사람이라는 것, 군대복무 중인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휴가를 왔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상고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면 아버지 곁에서 병간호를 해야지 절에는 왜 왔느냐고 재차 물어도 한숨만 쉴 뿐,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움이 안 되겠지만 가슴 속에 갇힌 걱정을 털어놓고 나면 조금은 홀가분할 것이니 털어놓으라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때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서 그러한 그를 절에서 내려보내도 영천까지 갈 수 없을 것이어서 함께 자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떠난 그가 절에 다시 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 오후였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술냄새를 풍겼다. 그는 술기운을 빌어서인지 자기의 신상(身上)을 이야기 하였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서 어렵게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고 한다. 그에게는 서로 장래를 약속한 같은 마을의 동갑내기 처녀가 있었다. 처녀의 집안도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취직을 해야 했다.

두 집의 부모들은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였고 아들과 딸은 각각 집안의 희망이었다. 청년의 집안에서는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자랑이었고 여자의 집안에서는 딸의 미모가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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