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갈 수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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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갈 수 없는 길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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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우려했던 대로 묵담(默潭) 스님은 부재 중이었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전화를 했을 때나 가까스로 스페인 광장에 도착해 다시 전화를 했을 때나 스님이 계신 관음사(觀音寺)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낱 같은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만한 데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엔 귀국을 하기 사흘 전쯤 스님을 찾아 뵐 생각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여행지인 영국에서부터 계획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평소 식성이 까다로운 선배와 빵과 버터만의 끼니를 사흘 이상 견디지 못했던 나는 해당 여행지에서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물보다 간식으로 준비했던 미숫가루로 끼니를 때운 적이 더 많았다. 미리 그런 사태를 예상해 각각 쌀과 라면 등의 주·부식을 배낭에 꾸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련한 짓이었다. 취사 도구를 이용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 30kg이 넘는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국 쏟고 옷도 버린다더니 바로 그런 경우였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안다. 여행자에겐 머리카락 하나라도 짐이 된다는 것을.

게다가 우리의 정서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유럽인들의 생활 습관도 우리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저녁 8시만 넘으면 썰렁해지는 거리의 풍경은 그렇다 치고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거리낌없이 피우고 난 담배를 아무 곳이나 휙휙 집어던지는 것이라든지 시도 때도 없이 남녀가 한 몸으로 뒤엉켜 애무를 즐기는 걸 볼 때마다 기운이 빠지고는 했다.

“아따! 저것 좀 봐. 알고 본께 이것들이 아주 쌍것들 아녀?”

이런 식으로, 그들의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비난하던 선배도 나중엔 이골이 난 듯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사실은 동서양의 문화와 윤리적인 바탕이 다른 데서 비롯된 관점의 차이인 셈이어서, 무턱대고 그들을 ‘쌍것들’로만 매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럽 대다수 도시의 기반시설이나 건축물에서도 그런 차이가 드러난다.

가깝게는 오늘 우리가 찾은 바르셀로나만 해도 그랬다. 이곳은 1992년 올림픽 때 황영조 선수가 몬주이크 신화를 만든 곳으로 익숙한 도시지만 일반적으로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생애의 대부분을 바친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전체가 완공되지 않은 가우디의 ‘성가족 교회’는 그 독특한 건축양식과 함께 한 도시의 문화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보여주는 명소로 꼽히고 있다. 아무튼 유럽인들이 그 규모에 관계없이 적어도 수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도로와 건물에서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하거나 그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본받을 만했다.

스페인 관음사는 몬주이크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뒤쪽으로는 오래 전에 세워진 성이 있고 근처에는 카탈루냐 미술관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유럽의 한국불교 포교를 위해 세워진 관음사는 창건 때부터 유럽 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그것은 묵담 스님의 활달한 포교 활동과 한국불교를 널리 알리겠다는 원력에 힘입은 바 크다. 문득 관음사 법당 안에 모셔진 작은 부처님과 추상화 기법으로 그려져 화제를 모았던 후불탱화를 사진으로 본 기억이 떠올랐다. 실로 유럽 포교의 근본도량다운 파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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