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예방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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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예방하는 지혜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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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요즈음은 일반 버스에도 냉방장치가 잘 되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 졌다. 워낙 전철보다는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라 약속시간을 넉넉히 두고 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은 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모습을 보면서 이런 상상, 저런 상상을 하며 그 시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세가 드신 분이 버스에 오를 것 같으면 그저 벌떡 일어나서 자리에 앉혀드려야 한다고 믿고 행동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제는 주변을 한 번 살펴보게 된다. 혹시 나보다 젊은 사람이 더 가까이에 있지는 않은지 있다면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여느 때와 같이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무슨 소린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환갑은 넘은 듯이 보이는 할머니가 기사아저씨에게 버스 요금의 잔돈을 달라는 소리였다. 마침 다음 정류장이 되어 새로 타는 손님의 요금에서 필요한 만큼을 제하고 할머니는 자리에 앉았다.
조금 지나자니 다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의 상황과 같이 잔돈 달라는 소리였다. 이번에 기사아저씨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며 “요금통이 고장나서 그래요.”라고 하며 차를 세우더니 벌떡 일어나 요금통을 마구 흔들어 대고는 그 자리에 서서 화난 얼굴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뒤에서 상황을 잘 모르는 승객들은 “빨리 갑시다.”하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사아저씨는 “차가 고장나서 못 가니 다음 차가 오면 그것을 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밖엔 비가 오고 있던 터라 선뜻 내리는 사람이 없이 모두 우물쭈물, 엉거주춤하니 다른 사람들의 동태만 살피는 듯했다. 앞에 앉아 있던 몇몇 승객은 차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며 수군거리기는 했으나 아무도 나서서 이의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사아저씨는 연방 핸드폰을 걸어댔고 비가 와서 그런지 계속 혼선이 되는 것 같았다. 몹시 짜증이 난 기사아저씨는 결국 전화 거는 것을 포기했는지 승객들을 내리도록 종용하고는 자신도 버스에서 내려 같은 회사의 버스가 오는 것을 보기 위해 도로의 안쪽 차선에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기사아저씨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 같은 번호의 버스는 한동안 오질 않았고 승객들의 노기(怒氣)어린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으나 기사아저씨의 귀에는 미치지 못하는 그저 불평일 따름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본생경에 나오는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큰 강을 오고가는 나룻배가 있었다. 그 지역에서는 그 나룻배가 훌륭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배를 이용했다. 나룻배의 뱃사공은 손님들을 다 건네주고는 배삯을 받는데 어느 날 마음씨가 좋지 않은 손님이 배삯을 주려 하지 않았다. 배를 한 시간이나 타고서도 돈을 안 내느냐는 뱃사공과 돈이 없다는 손님 사이에 옥신각신하다가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배에 함께 타고 있던 한 승려가 뱃사공에게 ‘이번에는 당신이 져주고 앞으로는 배삯을 미리 받으시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다.
드디어 같은 회사의 버스가 도착했고 불평하던 승객들은 재빨리 종종 걸음으로 버스를 올라탔고 우리는 이제부터 목적지를 향해 다시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생경의 이야기와 버스사건을 함께 생각해보니 서로 다른 입장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비슷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버스의 요금통이 고장나서 기사아저씨가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더라도 승객들의 약속시간을 맞춰주려는 마음이 기사아저씨한테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정류장과 정류장의 사이, 택시도 설 수 없는 그런 곳에 버스를 세워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다음 정류장에 버스를 세웠더라면 같은 회사의 버스가 아니더라도 급한 승객은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승객들의 대다수는 뜻밖의 시간을 낭비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자신의 시계만 쳐다볼 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약속시간에 늦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사아저씨의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본생경의 이야기나 이번 버스사건에서는 “문제를 예방하라”는 같은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사아저씨도 출발 전에 요금통을 점검하여 말썽을 예방했어야 했고, 승객들도 다음 정류장까지 가서 내려줄 것을 요청했더라면 문제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 한 가정, 한 고장, 한 나라를 잘 운영하는 사람들이란 말썽거리를 미연에 방지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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