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전편 에서 제8식의 정상(情狀)을 요약해서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송문(頌文)의 뜻을 살펴 보고자한다. 먼저 불가지(不可知)라고 한 3자(三字)는 가히 알 수 없다는 뜻으로 8식이 지니고 있는 집수(執受)와 8식의 자리(處)와 요별(了)을 가히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집수(執受)라는 말은 지니고 수용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지니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8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 한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처(處)는 소처(所處)로서 마음자리를 말한다. 이 자리는 오묘하고 불가사의해서 그 실처를 범인은 알 수 없음을 뜻한다. 요(了)는 요별(了別)이니 곧 분별해서 아는 힘이다. 이 또한 극미하고 미세하며 광대하고 무변하여 일체만물의 장단호오(長短好惡)을 가려내는 능력으로서 역시 범인의 소견으로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 불가지처(不可知處) 불가지요(不可知了)의 뜻을 요약해서 불가지집수처요(不可知執受處了)라 한 것이다.
이를 다시 세분해서 한 단씩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불가지(不可知):가히 알 수 없다고 한 이 말은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고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는 모두 8식의 경계(所緣境)와 움직임(行相) 으로서 상응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다. 이러한 작용을 요달해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불가지 (不可知)라 말한 것이다.
집수(執受): 지니(執)고 수용(受)한다는 뜻이다. 집수(執受)의 한계가 무한해서 이를 알 수 없는 8식은 마음의 주체이며 스스로 경계를 요별할 수 있는 능연(能緣)이라 한다. 8식의 능연인 집수(執受)가 있으므로 소연(所緣)의 경계를 인해서 마음이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가사의해서 가히 알 수 없는 8식의 집수(執受) 능력은 8식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마음과 밖에서 반연해 오는 경계가 일치해서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집수(執受)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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