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황악산 직지사
상태바
[古寺의 향기] 황악산 직지사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古寺의 향기

ꊱ 창건연기

  추풍령에서 남(南)으로 뻗어내린 줄기찬 산맥은 황학산(黃鶴山, 일명 黃岳山, 1111m)을 이루고 이 산맥 동녘 기슭에 직지사(直指寺)는 자리한다. 직지사는 한국불교의 문이 열린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유구한 법맥(法脈)이 숨쉬는 한국불교의 근본도량 ---

  경북 금릉군 대항면 운수동에 위치하여 김천시에서 10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왕래한다. 직지사는 신라가 이차돈(異次頓)의 순교(殉敎)로 불교가 공인된 신라 23대 법흥왕 14년(527)보다 무려 100여년이나 앞선, 18대 눌지왕 2년(418)에 아동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처음 신라에 불교를 전래시킨 사람은 아도화상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경북 선산에 도리사(桃李寺)를 세우고 멀리 황학산의 산세를 손으로 가르키며 「법성광명의 진리가 미래세까지 드날린 곳이다」하고 지금의 터에 사찰을 세우니 그때부터 직지사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법문에서 절 이름을 직지사로 명칭했다. 하는데 아마도 직지사의 사풍(寺風)을 따라 불리운 이름으로 보인다.

  한국불교를 개창하는 직지사가 불교의 근본 표방인 인간의 지존가치와 그 완성을 말하는 수행방법을 담은 직지법문(直指法文)을 사명(寺名)에 내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ꊲ 중창, 중수

  신라27대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1차 중수하였으며 56대 경순왕 4년(930) 천묵대사가 2차 중수하였다. 고려때에는 태조 19년(936) 능여(能如)대사가 신생국 고려조의 융성을 기원하는 호국 본찰로서 동국 제일의 가람으로 일신 중창, 수천의 승려가 운집하였다 한다.

  조선조 정종 1년(1399)에 어태(御胎)를 황학산 동쪽, 직지사의 북쪽 봉우리에 안장하고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였고 사찰을 크게 중수하였으며, 성종 19년(1488) 학조(學祖)스님이 왕실의 시주로 불사 중수하였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