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유토피아는 한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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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유토피아는 한국이었습니다.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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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목소리

한국에 온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지만 꽤 오랫동안 산 것처럼 모든 게 낯설지 않습니다. 불교신자 로서 채식을 하고 있는데다 김치와 된장찌개, 두부를 무척 좋아하는 저를 보고 사람들은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거라는 말을 합니다. 저 스스로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한국생활 에 적응을 잘 하고 있습니다.

사실 12년 전 불교를 만난 뒤부터 한국, 한국불교는 제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한국 에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딸 홀로 머나먼 나라에 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만류에 부딪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국땅을 밟게 된 것입 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서울의 가을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눈물이 샘솟았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 체할 수 없어 창피한 것도 모르고 엉엉 울었습니다.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는 감격과 아울러 영원 히 볼 수 없는 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싶어서 울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부처님과의 인연, 고등학교 때 숙명처럼 다가온 불교와의 인연이 저를 이 먼곳까지 오게 만들었 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오빠, 남자친구를 떼놓고 올 정도로 저의 이상향은 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 첫날부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유학생 중에 열에 아홉은 기독교 신자였던 것도 의아했었는데, 한국에 와서 엄청나게 많은 교회 그것도 유난히 큰 교회를 보고 놀랐습니다. 절보다는 교회가 먼저 눈에 뜨이는 나라, 한국불교를 배우기 위해 한국 에 온 나로서는 묘한 기분이 들었고, 이 나라는 서양의 종교식민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일었 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눈쌀이 찌푸려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손에는 성경책을 든 사람이 등에는 이상한 글씨를 써붙이고 큰 소리로 떠들고 다녔습니다. 한국친구에게 통역을 부탁 했더니 등판의 글씨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니 예수 믿 고 천당가라"는 말을 반복하며 설교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이 나왔습 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독교인의 편협한 마음은 비슷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인은 미국보다 훨씬 광 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도 예수를 믿어야 천당에 간다는 말은 하지 만 한국처럼 분별없이 공공장소에서 자기 종교를 선전하지도 않고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습니다.

마치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싸움하는 전쟁터의 용사처럼, 제 이익을 탐닉하느라 갖가지 감언이설 로 아이를 꼬시는 유괴범처럼 보이는 그 사람을 보면서 문득 십여 년 전 맺어지게 된 불교와의 인연이 생각납니다.

저는 어릴 때 카톨릭교를 믿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카톨릭교의 성직자였습니다. 아버 지는 신부였고 어머니는 수녀였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만난 두 분은 옷을 벗고 결혼을 하시어 우리 남매를 낳으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카톨릭교의 성직자였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우리 가정은 1 남 1녀의 평범하고 화목한 미국의 보통가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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