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동천(花開洞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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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동천(花開洞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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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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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원효성사

원효는 백제의 광복군(光復軍)이 벌써 2년 남짓 훈련을 쌓아 정예군으로 편성되었다는 간자 (間子)들의 보고에 접하자 머지않아 한바탕 큰 싸움이 전개되리라고 여기고 이를 수도 계림 에 알렸다.

간자들은 서라벌(계림)의 사복(蛇腹)장군과 화개동천의 원효대사에게 직접 지시를 받음과 동시에 두 곳으로 보고하는 이중선(二重線)을 갖고 있었다.

원효에게 닿는 선은 주로 백제의 남부지방과 백제가 망한 직후부터 경계의 초점이 되고 있 는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중 깊숙이에 있는 큰 사찰에 분산되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광복군의 훈련 상황 과 그들의 동태를 샅샅이 감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이럴 즈음에 열반종주(涅槃宗主) 보덕화상(普德和尙)의 두 제자, 즉 개심(開心)과 지수(智藪) 를 얻게 된 원효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들은 수행력도 깊거니와 무술도 높은 수준이어서 여러모로 이용가치(?)가 있는 재목이었다.

그들은 스승이신 보덕 화상이 입적하시면서 유훈을 남기신 점에 철저히 따르려는 측이었다.

스승님은 임종에 모인 제자들에게 삼국의 장래, 내지는 우리 배달민족의 전도에 대해 이렇 게 말씀하였다.

"삼국정립시대(三國鼎立時代)는 이제 불원간에 막을 내릴 것이니라. 대승교학(大乘敎學)이 월등히 앞선 신라가 삼한일통(三韓一統)의 천운(天運)을 얻어 승승장구할 것이니라.

얼마 전에 여기에 왔던 원효 대사는 내가 보기에는 예사 스님이 이니라 제 8지보살(第八地菩薩)이시고 삼한일통을 위하여 신라에 강림하셨느니라. 너희는 내 백세 후에는 원효대사를 스승으로 섬겨라. 서라벌로 옮겨가도 좋고 여기에 눌러 있어도 좋으니 원효 대사를 섬기고 가르침을 받아 난세의 동포들을 구제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라.

삼한일통을 이루게 되면 우리는 원래대로 한 핏줄 단군 자손으로 돌아갈 것이니 어는 누구 에게나 적대감정을 갖지 말고 한 동포 형제로 애휼히 여겨라.

고구려는 비록 강성하나 도교(道敎)를 수입하여 불교를 멀리 하고 있으니 7백 년 사직을 보 전하지 못할 것이요, 백제는 계율과 정토사상에 젖어 현세를 등한시한 탓으로 이미 기운 운 명이다. 허나 신라는 비록 고구려와 백제보다는 약한 나라이긴 하지만 대승교학을 신봉하고 발전시킨 결과 불보살님의 가호가 지극하셔서 일통(一統)의 광영(光榮)을 누리게 될 것이니 라.

이런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여 불법을 널리 펴고 피폐해진 동포들을 구 제하는 사문(沙門)이 되기를 바라노라."

보덕 화상은 과연 훌륭한 선지식이요 스승님이셨다. 삼국이 정립하여 서로가 물고 뜯는 사 이 이웃 중국은 천하통일을 이룬 데에 크게 자극을 받아 우리 배달민족도 하루 속히 한 울 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그 시기가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기실 고구려는 막리지(莫離支) 연개소문 장군이 나라를 그르치고 만 셈이다. 정권을 잡기 위 해 오두미교(五斗米敎)를 당나라에서 도입한 것이 불씨가 되어 결국 불법을 멀리하고, 많은 고승이 본국을 떠나게 하였으니 군사력만으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연개소문이었다.

물론 당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공로는 인정하지만 정치를 독단한 결과 나라의 사직이 흔 들리고 말았으니 이를 그의 아들들이 감당하기에는 실로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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