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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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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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샘, 잊을 수 없는 사람

해방 전후해서 지리산 기슭의 우리 마을에 두 걸물(?)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대장장이었고, 다른 분은 한문 선생이었다. 마을 공동소유인 디딜방아 곁 공터에다 작업장을 차린 대장장이는 시우쇠를 달궈서 온갖 연장을 만드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한문 선생은 어린 우리들에게 진서(漢文:천자문 . 사자소학 . 동몽선습등)를 사랑방에서 가르치면서 작시(作詩)법까지 일깨우는 일에 보람을 찾았다.

자랑이나 보람은 결국 그분들의 의식주 해결책이었지만 그분들의 정성과 열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호밋날 하나 세우는 데에도 사용자의 성품에 맞추느라 풀무질을 시켜보는 등 심지어 밭의 위치까지 묻고나서야 단련(鍛鍊)된 시우쇠에 해머질이었다. 풀무질을 시켜보는 것은 혹시 왼손잡이일까 싶어서였으며, 다음은 그 근처 땅 속에 묻힌 자갈이나 석각에 견딜만한 두께의 호밋날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라 했다.

보기에는 어렵고 상당한 두께의 책을 게을리 읽지 않던 한문 선생은 우리를 가르칠 때는 언제나 뿔관자 달리 망건 위에 감투를 쓴 채 긴 담뱃대까지 들고서 한껏 위엄을 부렸다. 대장장이보다 여남은 살은 아래인 것 같은데도 제갈양이나 되는 양 뽐내기까지 했다. 혹시 고샅에서 부인들을 만나면 그녀가 지나가도록 돌아 서 있는 분이다.

그러구러 오년 후였던가 싶다. 육이오 직후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사립중학교가 가까운 읍내에서 문을 열었다. 피난민 자녀와 그들과 함께 내려온 부모들이 향교의 널찍한 광장을 얻어 학교를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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