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의 첫걸음은 예불·보시·오계·참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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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의 첫걸음은 예불·보시·오계·참선으로부터
  • 관리자
  • 승인 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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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교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불교는 학문인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학문적인 관심으로 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불교를 알기 위해서 교리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양대학에 나가고, 전문 교수들의 강의를 즐겨 듣고, 경전을 탐독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좋은 통로 가운데 하나로서 마땅히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관심이 몸에 배어서 불교의 주요한 dharma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분석하면서 이론적으로 깨끗하게 정리해 보려고 꾀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것은 매우 곤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많은 불자들이 '해탈' '열반' '무아(無我)' '윤회' 등등의 dharma들을 책을 보고 논리를 세워서 매듭지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석해 놓으면 저기서 미진한 부분이 드러나고 그 부분을 개념적으로 정리해 놓으면 또 다른 개념이 고개를 치켜든다. 그래서 불교공부가 자칫 잘못되면, 개미 쳇바퀴 돌 듯, 끊임없는 개념놀이에 빠지고 만다. 개념놀이가 계속되면서 용어가 늘어나고 법수(法數)가 확대되고 이론만 더욱 교묘해지고 경전과 논서가 천장부지로 쌓여간다. 그래서 팔만사천의 경전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불자들은 그 방대한 경집·논서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다. 읽어야 할 경론이 무한정으로 많고 정리해야 될 개념들이 수없이 많다. 십 년을 읽어도 턱없이 부족하고 이십 년을 공부해도 항상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서 자꾸 매달리고 자꾸 깊이 빠져 들어간다.

불교공부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개념놀이를 불교공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개념놀이를 통해서 dharma를, 해탈 열반을 바르게 깨달았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Edward Conz 교수는 이렇게 논술하고 있다.

"열반이 어떤 것이라고 설명할 적절한 관념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반은 '생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열반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들이 〔본래, 필자 註〕없으며, 누구나 그것을 개인적으로 스스로 경험해야만 하며, 세상에는 미미하게나마 열반과 비슷한 것이 전혀 없으며, 추리로 그것을 가깝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반에 대한 모든 개념은 착각이다."

-Edward Conz 안성두 외 역, 『印度佛敎思想史』民族史, 1990, P.60-

예불·보시·오계·참선부터

'모든 개념은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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