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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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 관리자
  • 승인 2007.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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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원효성사

삼일삼야(三日三夜)

대안 대사와 원효는 장안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통을 지나 붉은 등이 즐비하게 켜진 골목길로 들어섰다.

홍등가의 집집에서는 벌써부터 노랫소리가 가야금의 은은한 곡조에 맞춰 흥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대안대사는 홍등가에 들어서면서 벌써 어깨를 들썩이고 두 발을 흥청거리며 걷고 있었고 원효는 뒤옹박을 두드려 대안 대사의 흥을 돋우어 주는 것이었다.

홍등가의 아가씨들은 문전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거나 거리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놓고 목을 내밀어 거리를 두리번거리다가 술꾼들이 나타날 양이면 서로 자기 집에 끌어들이려고 두팔을 잡아다니며 웃음과 추파를 던지곤 하였다.

대안과 원효를 보자 그 아가씨들은 서로 모시겠노라고 경쟁을 하듯 염의를 잡아당긴다.

"아-, 대안 대안 대안 이거 놓고 말하렴. 대안 대안 ."

"저희 집에 국화주가 천하 일미여요. 그냥 모실 터이니 어서 들어오세요."

"저희 집에는 새로 미희가 왔어요. 저희 집으로 가세요."

호객하는 아가씨들은 저마다 자기 집의 독특한 점을 들어 유혹한다.

"원래 곡차는 미희가 있어야 맛이 나는 법. 같은 값이면 새로 온 미희집에 가자꾸나. 대안 대안 ."

장안은 어느 뉘가 대안을 모르며 원효를 모르랴만 여기 홍등가에서는 대안을 하느님 위하듯 깍듯이 모시기로 소문난 지 오래다.

아무리 마셔도 계집의 육체를 범하는 법이 없고 언제나 동무가 되어 주며 또 재미있는 얘기로 늘 웃기기 잘하는 대안이므로 그의 인기는 홍등가에서 최고였다.

술을 파는 아가씨들은 비록 사내 앞에서 술을 따르고 웃음을 선사하고 하지만 자기 몸만은 함부로 내던지지 않는 긍지를 지닌 여자가 많았다.

신라의 사나이들은 애써 몸을 도사리는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는 아량을 사나이의 멋으로 여긴다.

그러나 술꾼 중에는 이따금씩 사나이의 멋을 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연약한 여자들과 시비를 벌이고 또 여자들을 울리기도 한다.

그래서 남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하는 풍조가 생겨났고 그로 인하여 복수심을 일으켜 도리어 남성정복에 적극성을 띄는 측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국에서도 대안 대사만큼은 모두들 부모처럼 받들었다.

대안 대사가 원한다면 어디서나 술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보통 여염집에서도 대안이 걸식차 나타나면 서로 다투어 공양을 올렸다.

원효는 이러한 대안이 자기보다 몇 생은 앞선 도인으로 보였고 때로는 부럽기조차 하였다.

말하자면 여지껏 자기가 닦은 수행은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대안 대사가 닦은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산 수행[活修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요즘 대안과 어울릴 적마다 대안이 이끄는 대로 탁발도 하고 술집에 들려 곡차도 마시며 뒤옹박도 두들기며 노래도 곧잘 부르게 된 것이었다.

대안은 원효의 대선배요 또 사형(師兄)이 되지만 원효에게는 허물없는 벗이 되오 주었다.

"화엄종주는 산간에서만 화엄종주여서야 어디 무변중생을 모두 제도할까? 바로 중생속에 뛰어들어야 산 법문(活法問) 참 법문이 열리고 정작 중생을 제도하는 거지."

이렇게 타일러 주는 대안 대사의 경지는 너무도 오묘하고 난사의(難思議)하지만 대안 대사와 자주 어울리며 점점 피부에 느껴져 왔다.

"과연 무애도인(無碍道人)이시다 ."

원효는 대안을 일러 다만 이렇게 밖에 달리 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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