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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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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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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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 우리 문화

그러나 그 문화재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기에는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문화재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종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단순하게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종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단순하게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편의를 위하여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 지정한 국보와 보물의 80% 가량이 불교문화재인데 만약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이 이 불교 문화재 들을 감상하려고 한다면 이는 나무와 돌이 마주앉은 것처럼 어떠한 감흥도 불러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서양의 어느 학자가 어느 한 민족의 문화적 실체는 그 민족이 소유한 종교에 달려 있다 고 말한 것은 정곡을 찌른 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민족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문화재를 감상하려고 한다면 불교를 우선적으로 알아야 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교로 신봉된 불교와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도 묵묵히 부처님의 법등을 이어온 조선 시대의 불교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우리의 문화재를 감상할 방법이 없다

한국인이 한국의 문화재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은 못하더라도 그 문화재에 대한 조그만 이해조차 없다면 한국인의 얼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한국인에게 한국의 문화재중에서 그 역사가 길고 아름다움이 뛰어난 공예품을 말하라고 한다면 누구나 고려시대의 상감청자를 우선적으로 꼽을 것이다. 이러한 대답을 하게된 것은 우리들 모두가 국민학교때 부터 고려의 상감청자는 세계적인 걸작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비록 그 어린 시절에 청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상감 이 어떠한 기술인지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청자, 푸른색을 띈 도자기.

왜 고려시대의 도공들은 사람이 쓰는 그릇의 색깔을 푸른색 한가지로만 고집하였을까?

왜 수 많은 종류의 색깔들을 다 젖혀놓고 푸른색만을 위하여 땀과 눈물을 끊임없이 쏟아 내었을까?

사실 도자기에 푸른색을 넣으려고 처음 노력을 한 사람들은 중국인 들이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이 애지중지해오던 비취색을 도자기에 넣어 보려고 노력해 왔고 그러한 집념의 결과는 중국청자를 생산하여 아시아는 물론 멀리는 이집트까지 퍼지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중국의 청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신라시대 말기였는데 그 때에 중국에 유학하였던 유학생이나 스님들이 다도를 배워오게 되었고 그에 부수적으로 도자기도 함께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요가 점차로 늘어나면서 중국의 청자를 모방한 도자기가 이 땅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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