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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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장
  • 관리자
  • 승인 2007.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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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샘/맑은 거울 앞에 서다

한 선생님께 

그간 별고 없으신지요?

원주에서 반송되어 대전으로 온 혜서, 이제야 읽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염려 덕분으로 무사히 퇴원, 이곳으로 이사하여 우선 약을 먹으면서 몸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후의는 제가 건강을 회복하여 진정한 의미의 작가가 되는 것으로 보답드리고저 합니다. 건강하심과 가내의 균안을 기원드리며,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씨가 1983년 10월24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느 산골짝에서 내게 보낸 편지다. 평소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내가 김성동 씨의 교통사고를 듣게 된 것은 경남 부곡온천에서였다. 소식을 접한 순간 꽤 진한충격을 받았다. 또 한 사람의 작가가, 아니 중생이 검불 스러지듯 가는 것은 아닐는지. 생에 대한 연민과 허무감이 몰려와 가슴 한구석을 저몄다. 집에 올라와서도 얼마 있다가 한국문학사로 전화를 걸어, 김성동 씨가 있다는 강원도 원주 병원으로 안부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편지가 되돌아왔다. 퇴원을 했단다.

또 얼마를 그냥 지내다가 한국문학사를 맡고 있는 시인 이근배 씨를 만났기에 김성동 씨의 거처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서울 백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또 얼마를 있다가 시내 용무차 나가는 길이 있어 문병이라도 한번 들를까 싶어 백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그곳에서도 이미 퇴원을 했단다. 꼭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토록 김성동 씨한테 신경을 쓰는 건지 어느 땐 자신이 생각해 봐도 실소가 나왔다.

내 발등 불도 못 끄는 주제에. 아무튼 나는 다시 수소문을 해 원주에서 딱지가 붙어 되돌아왔던 편지를 그대로 김성동 씨한테 보냈다. 지상을 통해 작품만 몇 편 읽어보았을 뿐, 먼발치로 어쩐지 우수에 깃든 듯한 인상을 더러 보았을 뿐 그의 인간성이나 습관 같은 것조차 나는 알질 못한다. 흔한 말로 ‘커피’ 한잔 서로 나누어 본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그토록 그의 안부를 전하려고 했는지 김성동 씨는 모를 터이다.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어렴 풋 하게나마 어떤 마음의 끈을 이어간다면 전무(全無)한 것도 아니리라.

벌써 30 여년이 지난 일이다. 당시 가출해서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 객지를 방랑하던 내가 몇 권의 낡은 책과 원고지가 든 보스톤백 하날 달랑 든 채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修德寺)를 찾았을 땐 금붕어지느러미 같은 석양도 저물어 저녁이라기엔 좀 늦었고 밤이라기엔 이른 그런 시각이었다. 점심도 굶은 채 덕산에서부터 걸었으니 체력의 한계도 오고 제일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지나가던 나그네인데 하루밤 유할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안내를 받아 대웅전 뜰아래 좌측으로 서있는 일실에 들어선 나는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피로에 그만 사지를 뻗고 벌렁 누워버려 잠이 들었다.

어느 때 쯤인가 조심스레 방문이 여닫히는 소리에 나는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젊은 스님이 소반 하나를 들고 들어섰다. 허기질 대로 허기졌던 나는 밥 한 그릇을 어떻게 먹어치웠는지 모르게 비워 버리곤 곧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버렸다. 죽은 듯이 빠졌던 깊은 수면에서 내가 눈을 떴을 땐 대웅전 쪽에서 목탁소리와 아침예불하는 소리가 고즈넉하고도 경건하게 들려오는 이른 새벽이었다. 아아, 그 순간의 가슴 뭉클했던 환희와 감동이라니 ! 무한광대한 우주공간에 정말 티끌만도 못한 존재가 눈을 뜨고 살아있는 현실이 그토록 내 가슴을 경외롭게 강타할줄을 미처 몰랐다. 청정하고 장려한 대자연의 품속에 서 불심(佛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 고독한 영혼은 한참동안 망연자실 끈끈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도 절을 찾거나 교회를 나가는 신자는 아니다. 김성동 씨는 일찍 불가에 몸 담았던 작가라고 알고 있다. 아마, 그래서 나는 그토록 끈질기게 그의 뒤를 좇아 안부를 전하려고 했을까. 늘 길흉화복이 뒤섞여 물 흐르듯 하는 게 인생이아니던가.그걸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체현(體現)하고 살아가는게 문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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