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보살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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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보살로 살련다
  • 관리자
  • 승인 2007.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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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만남의 기쁨

 

 내가 절에 열심히 다니는 불교신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는 친구들이 많다. 왜냐하면 내가 학창시절에 절과 스님에게 받은 박대와 수모가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을 친구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하고 고소를 금할 수 없다.

 대학교 1학년 첫학기를 마치고 2학기 등록금이 없어 불가불 휴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기소침한 마음도 달랠겸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떠났다. 부산에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창녕을 거쳐 해인사로 도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틀만인가 해인사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 한 저녁 때였다. 절에서 하룻밤 자려고 들어 갔는데 행색이 남루해서 그랬는지 문전에서 쫓겨 나왔다. 할 수 없이 절앞에 있는 인가에서 겨우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절 인심 고약하다 생각한 우리는 약도 오르고 장난도 겸해 주인집 헛간에 있는 호미를 꺼내 절 앞 감자밭으로 가서 여름 내내 농사지어논 감자밭을 깡그리 파버렸다. 아직 이른 가을이라 감자알이 그리 크지 않아 다 주워서 모으니 한 양동이는 된 것 같아다. 그것을 잘게 채를 썰어 가지고 간 쌀 한주먹과 멸치 한봉지를 넣고 큰 솥에 죽을 끓여 허겁지겁 먹었는데 먹기가 급하게 한놈 두놈 화장실에 들락거려 친구들 중 세놈이 한숨도 못잤던 기억이 난다. 인과응보로 말한다면 몇시간 전에 지은 업이 바로 과보로 나타난 것이다. 그 때는 별로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었고 다만 하룻밤 재워주지 않고 쫓아내던 그 스님 욕만 실컷 한 것 같다.

 또 대학교 2학년때 여름 방학을 하기 바로 전 학내 연중행사로 불암제를 하는데 科대항 체육대회가 불암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운동경기 종목 중에 건보대회는 교정에서 불암산 정상까지 네명이 한조가 되어 올라갔다 오는 경기였다. 나는 건보경기 선수의 뒷바라지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경기에 할당된 점수가 제일 높았기 때문에 우리과를 우승시키는데 막중한 비중을 차지했었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잘 도와 줄까 생각하다가 중간 중간에 물통을 준비해서 선수들 머리에 부을 수 있도록 여남은개 물통을 준비해 요소요소에 배치를 하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정작 문제는 물 공급원에 있었다.

 불암산에는 여름에 비가 오지 않으면 산 전체가 말라 버리기 때문에 물이 귀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산 중간에 학도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는데 여기서 물을 구하지 않으면 하계리까지 내려가야 했다. 우리 일행은 궁리 끝에 학도암 암자를 이용하기로 합의하고 밤에 슬금슬금 물을 퍼서 나르다가 마침내 스님께 들켜 호되게 얻어맞고 물도 쏟기우고 물통까지 다 밟혀 버렸다. 그 스님은 검은 도복을 입고 체구가 우람했으며 봉술을 하는지 막대기를 들고 다녔다. 화가 난 우리는 도망쳐 나오면서 “동냥은 못줄 망정 쪽박은 왜 깹니까?”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할 수 없이 리어카를 하나 빌려 하계리에서 그 먼 길을 오르 내리며 물통을 운반했는데 그 때 그 스님이 얼마나 미웠는지 응원가에 그 절과 스님을 욕하는 가사를 붙여 불렀더니 그 노래가 그 당시 대학가에 유행하여 막걸리 파티만 하면 으레 그 노래가 흥을 돋구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삼보 중에 하나인 스님을 욕되게 했으니 무간지옥에 떨어질 일을 한 것이다. 어쨌든 내마음 속에 절과 스님들의 인상이 그렇게 좋게 남아있지 않았고, 등산할 때 절을 만나 약수는 얻어 먹으면서도 한번도 법당에 고개 숙여본 기억이 없었다.

 목불이나 석불에게 절하는 것은 의지가 빈약한 사람이나 복전이나 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비양거렸던 것이다. 이러한 오만함과 아집은 상당히 오래 갔었고 집의 보살이 불광사 간다고 하여 차를 태워주러 왔다갔다 하면서 절 앞을 배회하다 절 문턱을 넘은 것이 삼개월 쯤 걸렸던 것 같다.

 하루는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 철학강의 듣는 셈 치고 한번 가보자고 도둑 고양이 걸음을 하고 들어가서 맨 꽁무니에 슬쩍 앉았다. 그 날은 광덕스님께서 법문하시는 날이었다. 그 때 한창 유류파동으로 경기가 내리막길하여 우리 회사도 문을 닫기 일보직전이었고 어려운 회사에는 항상 그랬듯이 많은 시시비비가 얽혀 저녁에 소주 한잔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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