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청정하고 미묘한 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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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청정하고 미묘한 장엄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6.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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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노사나괘불>

헐떡거리던 지난해의 마음을
탁 놓아버린 곳에 
새싹이 호젓이 솟아났다
갖은 흙탕물 속에서
쉬고 또 쉬며
흙들을 가라앉히자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피었다
얽힌 실타래와 깨어진 유리조각들을
나무하고 밥 짓고 빨래하듯
단순 반복의 불도저로
깔끔하게 밀어버리자
텅 빈 내 마음의 벌판 위에
온갖 빛들이 쏟아져 내리며
새 세상을 연출하는 이 봄날.
- 철목개화鐵木開花, 고영섭 

강이 풀리고 꽃이 폈다. 섬진강 물길 따라 꽃길이 열렸다. 마치 커다란 불길이 강변을 타고 오르듯, 그렇게 십리길 벚꽃은 번지듯 타고 올라 끝간 줄 몰랐다. 드디어 꽃길이 끝나는 곳엔, 세상 마지막 마을인 양 절이 있다. ‘새 세상을 연출하는 이 봄날’에 쌍계사에서는 특별한 괘불재가 열렸다.(도판 01, 02) 
작년, 아름답기로 유명한 쌍계사 괘불을 본지에 소개하고자 취재를 요청했었다. 그런데 주지스님 말씀인즉슨, 쌍계사 괘불재는 ‘보살계 수계’ 괘불재인데, 만약 ‘보살계’를 받는다면 취재를 허락해 주시겠다는 것. ‘스님, 그러면 저는 이제 음주가무는 끝인가요.’ 속절없이 보살계를 신청하고 꼬박 1년을 기다렸다. 
드디어 쌍계사 가는 날, 눈부신 햇살 속에 벚꽃들이 투명하게 반사되어 마치 하얗게 눈이 내린 듯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지리산에 온갖 다양한 꽃과 푸르름을 불러일으키는 이 강렬한 봄기운. 작렬하는 막바지 봄기운이, 장엄한 괘불을 펼치게 하고, 급기야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 마음에 ‘보살의 불길’을 붙이고야 마는 듯하다.

| 석가모니 보살계 설법회상
보살계 대법회가 팔영루에서 거행되었다. 금빛 찬란한 금란가사를 입은 세 화상과 일곱 증사가 설법회상에 일렬로 엄숙하게 자리하셨다. 쌍계사는 의상 대사의 제자인 삼법 스님이 육조혜능(남종선의 종조)을 흠모하여 우여곡절 끝에 그분의 정수리 뼈 사리[頂相]를 모셔온 도량으로 유명하다. 또 절 마당 한가운데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서있는데, 진감 국사는 범패(불교음악)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한 불교음악의 첫 전파자이시자, 중국으로부터 차나무를 들여와 이곳 일대를 차 시배지로 만든 선차禪茶 문화의 선각자이시다. 화엄종 일변도였던 당시 종풍에 남종선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선종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 바로 쌍계사.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주된 흐름은 ‘화엄華嚴+선禪’으로 일관되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상적 배경이 정립된 시원지 중 한 곳이라 하겠다. 
쌍계사의 창시자이신 삼법 스님과 중창자이신 진감 스님, 임진왜란 이후 재건의 중심 역할을 하신 각성 스님과 성총 스님에 이어 현재의 고산 대종사로 육조혜능의 전법의 맥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팔영루의 설법회상에서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보광 스님을 필두로 한 세 화상과 일곱 증사가 자리했다. 이러한 법맥을 잇는 스님들께서 여기 법회에 모인 중생들에게 바야흐로 ‘보살계’를 수계하시려 하고 있다. 

지금 나 노사나불이 연화대에 바르게 앉아 / 둘러싼 천 꽃 위에 다시 일천 석가모니 나투니 / 한 꽃 위에 백억의 세계 한 세계에 한 석가모니로다 / 보리수 밑에 각각 앉아 일시에 불도를 이루었거니 / 이와 같이 천백 억이 노사나의 분신일세 / 천백 억 석가모니가 미진수의 중생을 각각 이끌고 / 한 가지 내 처소에 이르러 나에게 불계佛戒를 청하노니 / 감로의 문 크게 열리었네 / 그 때에 천백 억 석가모니가 본 도량에 돌아가서 / 보리수 아래 앉아 본사 노사나불의 십중사십팔계十重四十戒 외우시니 / 계戒의 밝음이 해와 달과 같고 영락보배 구슬과 같아서 / 미진수 보살대중 이로 해서 정각正覺을 성취했네 / 이것이 노사나불 외우신 바요 내 또한 그리 외우나니 / 너희들 새로 배우는 보살들아, 머리에 떠받들어 계를 지니고 / 모두 다 지니어서 온누리에 널리 전하라
-보살계본 『범망경』 「서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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