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을 연마하여야 한다.
대도는 말에 있지 않으나, 말이 아니면 도를 밝힐 수 없고, 부법은 배우는 데 있지 않으나, 배우지 않으면 법을 밝히지 못한다.
진정으로 생가를 위하는 자라면, 명상(名相)을 버리고 자신을 다그치며 힘써 참구해야 한다. 만약 의학(義學)만을 쫓거나 근본을 버리고 지말만을 추구한다면, 총명으로는 업식을 대적할 수 없을 것이요, 박학으로 어찌 고륜(苦輪)을 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학문의 도는 높고 넓어서 끝이 없고 오묘하고 깊어서 다할 수 없다.
선비가 머리가 희도록 육경(六經)을 공부하여도 오히려 고통이 부족하거든 하물며 손톱이 닳는 것을 아쉬워 하면서 출세하기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종교를 통하고 고금을 분석하며 강종을 밝히고 기용을 알아서 후인들의 안목이 되고 인천의 스승이 되려 한다면 학문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학문에는 내학(內學)과 외학(外學)이 있다.
내학이란 어떤 것인가. 용궁에 가득하고 해장(海藏)에 넘치며, 인도와 우리나라의 것과 범어와 중국어와 천칠백칙(千七百則)의 갖가지 언설갈등인 출세간의 일체 저술이 이것이다.
외학이란 어떤 것인가. 분전(墳典 : 三墳과 五典, 곧 三 五 의 典 )과 구삭(丘索 : 九丘와 八索, 모두 古書의 이름)과 시서(詩書)와 육예(六藝)와 시골이나 저자의 얘기거리와 변방이나 명산의 풍속과 춘추사학(春秋史學)과 제자백가인 세간의 일체 전적이 이것이다.
내학이 아니면 본업을 알 수 없으니, 출세하여 어떻게 중생을 이롭게 하며, 외학이 아니면 유술(儒術)을 들을 수 없으니, 세간에 나아가서 중생에게 응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선류(禪流)는 텅 비워 배우지 않고, 암둔하여 무지한 것이 본분이다'하고 말한다. 그렇게하면 어떻게 불조의 심수(心髓)를 밝힐 수 있으며, 천하 승속의 준걸한 이를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어떤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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