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 무주에 자리 잡으면서 자급자족이란 신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도시내기답게 뼛속 깊이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아줌마가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에 사는 게 얼마나 이질적인가. 필요한 게 있으면 돈 주고 사되 어떻게 하면 같은 값으로 더 나은 상품을 선택하느냐는 배웠지만, 그걸 손수 해내기 위해 몸으로 움직이는 건 배우지 못했으니….
| 가마솥 불도 못 때던 도시사람우리 동네는 산골 중에서도 아주 척박한 동네다. 공장이나 축사, 시설하우스도 없다. 마을 어른들은 다랑이 논밭에서 웬만한 건 손수 다 농사지어 드 신다. 우리가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전통이 살아있어, 누구네 잔치나 상을 당하면 마을사람들이 사나흘 모여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대접했고 논두렁에서 지나가는 사람까지 불러서 참을 나눠 먹었다.
처음 살던 마을 빈집은 네 칸 흙집. 부엌은 가마솥이 두 개 걸려있는 흙바닥이었다. 욕실은 아예 없고 부엌에서는 물일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집터도 작아 집 담벼락에 대추나무 하나가 서있는 게 다다.
1975년부터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 전으로 돌아간 듯 했다. 목욕 한번 하려면, 물을 길어다가 가마솥에 붓고, 가마솥에 불을 때야 하는데 불 때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땔감 마련부터 엉망이었다. 어렵게 물을 데우고 나면 그걸 통에 옮겨 붓고, 들어앉아서 씻은 후에는 다시 그 물을 퍼다 버려야 했다.
남편은 뭐하냐고? 첫날 가마솥에 밥을 한번 해주더니 그 뒤론 감감무소식. 목욕하고 싶으면 밭 곁에 계곡에 가서 하라나…. 처음 짓는 농사. 마을 어른들 보시기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들어와 농약도 비료도 안 주고 한다니, 걱정에 또 걱정….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제대로 해내야겠다며 온통 마음이 논밭에 가있었겠지. 그걸 모르지 않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선녀탕에 가서 물에 들어가면 개흙이 뽀얗게 일어난다. 물은 또 얼마나 차가운지. 가만있으면 뭐가 와서 다리를 톡톡 치고 간다. 물고기들이 이게 뭔가 싶어서 맛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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