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이천 영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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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이천 영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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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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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위치와 주위환경

 서울을 기점으로 영동 고속도로를 따라 약 60km쯤 달리면 이천(利川) 인터체인지가 나타난다. 고속버스로 1시간여거리, 차창 밖으로 성하의 싱그러움이 펼쳐지고 넓은 들판의 짙푸르름은 평화롭기만 하다.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 관고리 설봉산 영월암 (映月庵)은 통일 신라 초기 문무왕 때에 의상대사(義相大師)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오랜 세월의 흐름에 사찰의 확실한 창건연대 및 사찰의 기록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주변 환경과 구전(口傳) 그리고 몇몇 기록을 통하여 사찰 역사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경기도 동남부 이천군(利川郡) 일대, 광주산맥이 점차 낮아지면서 구룡(丘陵)을 이루고 광활한 이천평원(利川平原)을 펼쳐 놓았다. 이곳은 토지가 넓고 비옥하여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우리조상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터전을 일구어 온 지방이다.

 이 일대는 품질이 우수한 쌀을 비롯하여 배, 콩 등이 특산물이며, 또한 우리나라 도예(陶藝)의 중심지이자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한 이천평원은 우리 겨레의 숨결이 오늘에 이어진, 고요하고 평화로운 전원(田園)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원의 평화로움은 영월암(映月庵)을 참배하고 역사의 뒤안길을 더듬어 보았을때, 애잔한 감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넓고 비옥한 땅, 이천이 안고 있는 지리적 여건은 항상 정복자의 세력권에 두려는 야욕으로 인하여 전쟁의 수난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국 시대 한때는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가 점령하고, 또 신라의 진흥왕이 점령하는 과정에서 숱한 인명피해를 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전쟁은 후삼국 시대에도 계속되어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을 치고자 이곳에 군대를 거느리고 남천(南川)이라는 내(川)에 이른다. 남천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왕건의 군내는 이 지방에 사는 서목(徐穆)이라는 사람의 안내로 무사히 내를 건너 승리를 거둔다. 왕건은 이 일을 기뻐하여 이 지방을 이천(利川)이라고 명명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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