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은덕을 이웃에게 회향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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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은덕을 이웃에게 회향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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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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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수기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강원도로, 충청도로 경치 좋은 산골짜기로만 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곳에는 관사가 있었기에 머무를 곳 없는 저희 들에게는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동생 학교 관계로 어머님께서는 서울에 계셨고 저는 아번님을 모시고 강원도 화천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적은 봉급으로 두집 살림을 해야 했기에 억척스럽게 일을 했습니다. 절약만이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면 넓은 관사 뜰은 물론 길가에 놀고 있는 땅을 일구어 분뇨를 거름으로 사용하여 씨뿌리려 가꾸어 계절마다 다른 채소를 심어 생활했습니다.

난방과 취사용 불은 전기로 하게 되어 있어 땔감 걱정은 없었습니다. 생활비는 아버님 담배값과 양식값 외엔 거의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꼬박 일정한 액수의 돈을 서울로 송금하며 빨리 삼촌이 공부 잘하여 좋은 직장 갖기를 학수고대 하면서 지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린 것들이 하나 둘 태어났습니다. 과자 하나를 못 사주며 제가 가꾼 감자, 고구마, 옥수수, 오이, 참외 등으로 간식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것들에게 "미안하구나 조금만 더 참자 너희들의 내일을 위해서란다.

너희들이 학교 갈 때는 엄마도 착한 내 아가들에게 마음껏 해 줄 수 있을 것 같애"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산간벽지에서 근검절약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무던히도 참고 이해해 주신 아버님과 남편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온 가족의 도움으로 결혼생활 5년만에 천호동 변두리에 아주 작은 집을 장만하여 온 식구가 함께 모여 살게 되었고 시동생께서는 대학을 마치고 좋은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였습니다.

제일 기쁜 것은 늙으신 아번님, 어머님께서 함께 계실 수 있고 모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머리 속에는 항상 어린 것들이 더 자라기 전에 절약해야 된다는 생각에 돈이 조금만 모여도 집 둘레의 땅을 조금씩 사서 늘렸습니다.

[2] 주는 마음 기쁨에 넘치고
런데 뜻밖에 일이 생겼습니다. 시동생께서는 저희들에게 새집을 마런할 돈을 요구해 왔습니다. 시아번님께서는 너의 형이 대학공부까지 시켜 주었는데 무슨 당치 않는 말을 하느냐고 나무라셨지만 어머님께서는 작은 아들의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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