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은사의 죽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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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은사의 죽음 앞에서
  • 관리자
  • 승인 200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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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그늘

신혼 신접 살림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되서 옛 은사님의 부음을 전해듣고 어느 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병원 건물의 번드레한 위풍과는 달리 영안실은 지하실 차고 옆 한쪽 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숨어 있었다. 짙은 향내음이 가득한 입구를 들어서니 늦은 밤시간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멍석을 깔고 술판, 화투판이 벌어졌고 벌겋게 달아오른 사내들은 상주집 사람들을 불러가며 술과 안주를 청했다. 간단히 분향을 하고 지친 모습의 어린 상주와 목례를 한 뒤 먼저 온 친구들과 함께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너무 어린 상주가 무척이나 측은하다고 하였다. 몇 잔의 술을 마시고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들은 옛 학창시절의 기억들을 하나씩 토해 내었다.

여유있고 매사에 자신감이 가득차시던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 하지만 당신의 죽음을 직감하신 뒤로는 식음을 거르시고 집안 사람들조차 멀리하면서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시다가 외롭고 쓸쓸한 최후를 맞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어린 자식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도둑맞은 자신의 여분의 삶에 대한 마지막 미련이었을 것이라고… 참으로 덧없는 삶이라고…

시간이 좀 지나고 술기운이 오르자 친구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근황을 묻기 시작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고 결혼해서 벌써 애를 낳았고 취직을 했고 장사를 하고 지난 주에 설악산에 갔다왔고 누구를 만났고 그런데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할 일이 걱정이라고… 여기저기서 걸한 웃음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화투판이 시작되었다. 뿌연 담배연기와 짙은 향내음이 한데 뒤섞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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