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의 대원강원(大圓講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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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의 대원강원(大圓講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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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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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학인시절

 -우리 스님 石顚 朴漢永 스님을 회상한다-

  󰊵그리워라 대원강원

 개운사 불교 전문 강원이 열린 것은 병인년(1926년) 10월이니 내가 아직 강화에 있을 때에 해당된다. 그리고 3년간 강원을 계속하다가 기사년(1929년) 3월에 대원암으로 옮겼다. 대원암 강원은 불교연구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화엄경을 위주로 하고 전등록(傳燈錄), 염송(拈頌)도 강의하였으며 학인들은 대개 일대시교를 마쳤거나 강사를 지내던 분들이 모였다. 말하자면 연구반인 셈인데 거기에는 대개 두 부류의 학인들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석전 스님의 높은 학덕을 사모하여 그 문하에서 배웠다는 긍지를 갖고 싶었던 사람이며 또 한편에는 고등연구반에서 교학을 탁마하기 위해서 모였었다. 그런 만큼 학인들은 그 기초 소양이 다양했고 제각기 독특한 전문분야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한학에 깊은 조예가 있다든가 시문에 일가견이 있다든가 현대문학에 소양이 있는가 하면 법률학. 정치학. 철학 방면에 제각기 주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대원암과 칠성암으로 나뉘어 거처하면서 한방에 무릎이 서로 닿을 만큼 좁게 모여 앉아 열렬히 토론하였다. 대개 80~100명이 지냈으니 한 방에 10여명이 함께 지냈던 것이다. 아침 쇳송하고 예불하면 모두 입선한다. 아침 공양하고 논경하며 그리고 조실스님께 문강한다.

 강원의 공부 방법은 전통적인 방식이 그대로 지켜졌다. 먼저 강통을 빼어 발기와 중강을 정한다. 그리고 발기가 새기고 질문하며 중강은 질문에 답하고 토론의 중심이 된다. 토론을 논강이라 하지만 논강에서 충분히 문제점이 해명되거나 토론과정에서 결론이 미흡할 때에는 그 문제는 일단 조실스님께 문강해서 결론을 얻는다. 이러한 강원의 불교 방식은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것이지만 지금 돌이켜 보아도 참으로 훌륭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가 열심히 공부하고 문제의 핵심에 파고들어 함께 깊은 토론을 함으로써 서로의 이해를 깊이 하고 문제점을 함께 추궁해 가는 것이다. 조실스님이 문제의 결론을 내리지만 조실스님의 독단론이 아니라 대개는 과거 선사스님들의 학설과 의견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자연 그 사이에 조실스님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강원에서는 이 방법을 취하지 못한 곳이 많다. 교재문제, 학인의 한문 실력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모름지기 경전연구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연구방식이라 생각된다.

문강은 대개 오전 중에 끝났다. 오후에는 주어진 과제에 따라 또한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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