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버려야만 편안하다
상태바
놓아버려야만 편안하다
  • 관리자
  • 승인 2009.07.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의 고전 종문무고(宗門武庫) [7]

한 사람은 눈썹이 무성하고 머리가 눈처럼 센 노승이었고, 한 사람은 소년인데 모두가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다. 고(杲)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나의 제자들 중에 이런스님들이 있었던가?’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노라니, 잠시 후 다시 두 사람이 승당을나갔다.

고(杲)가 그들의 뒤를 쫓아가서 보니, 불전(佛殿)  안으로 들어갔다. 고도 역시 따라들어갔다. 등불 그림자가 휘황하고 향로에는 아직까지 불씨가 남아있었다. 고가 향을사르고 부처님께 예를 드리니, 두 스님이 다시 나갔다.

다시 그들의 뒤를 쫓아 불전 앞에 이르러 어쩌다 그들의 행방을 놓쳐버렸다. 그리하여‘향합을 불전안에 둔 것을 잊어버렸구나’하고 생각하며 도로가서 가져오려는데,불전의 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직전행자(直殿行者)인 수순(守舜)을 불러 문을 열게하니 순(舜)이 열쇠로 문을열어주었다. 향로에는 향연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향합은 보계(寶堦)위에 그대로놓여있었으나 자신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불조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로, 그때 수순도 곁에서 증명해 주었다.

승상(大丞相) 여공(呂公) 몽정(蒙正)1)은 낙양 사람으로, 미천할 때 생계가 곤궁하였는데 대설(大雪)이 달포여나 내려 밥을 빌던 부귀한 자의 집이 눈에 막힌 적이 있었다. 이렇게 젊었을 때의 급박한 사정을 다음과 같이 시로 남긴 것이 있다.

열 번 부잣집 문을 두드리면 아홉 번은 열어주지 않아,
온 몸에 눈보라를 맞고 또 빈손으로 돌아오고 만다.
문에 들어 서 애처로이 처자식 얼굴을 바라보니,
불 꺼진 싸늘한 화로, 밤새워 시름에 빠진다.
그 때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다.

도중에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의 곤궁을 측은히 여겨 그를 절로 맞이해 그가 돌아가는 길에 음식과 의복을 주며 돈꿰미도 주어 보냈다. 달포여 만에 또 다 떨어져 다시 그 스님을 찾았다.

스님이“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습니다. 차라리 가족들을 데리고 절 바깥채에 기거하면서 밥 먹을 때는 대중과 같이 죽 밥 간에서 나누어 먹으면 거의 장구책이 될 것입니다.”하니, 여(呂)가 그 말대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이젠 의식에 곤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마침내 힘써 책을 읽어 그 해에 향천(鄕薦)을 획득하니, 그 스님이 말과 종을 사고 의장(衣裝)을 준비해 주며 서울로 가서 대과(大科)에 응시하게 하였다.

궁중에서 시험을 치러, 전시관(展試官)이 이름을 부르니, 수석에 올랐다.그리하여 처음에 서경(西京)의 통판(通判)에 부임하여, 그 스님과 만났을 때도 평시와 같이 교유하며 10년 동안 집정하였다.

무릇 교사(郊祀)2)할 때마다 봉급(俸給)한 것이 있으면 모두 다락에 쌓아두기만하니, 태종(太宗)이 하루는 “경은 누차 교사를 지냈으면서 봉급을 쓰는 것 같지 않으니,무슨 까닭이시오?”하고 물으니, “신은 사은(私恩)이 있사온대, 아직 갚지 못 했나이다”하였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