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근본사상은 중도(中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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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근본사상은 중도(中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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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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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불교의 근본사상 6
▲ 성철 종정스님

■ 중도사상의 독창성

 지금까지 살펴본 바 근본불교, 윈시불교,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것이 중도사상임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이제 중도사상이 불교만의 독특한 진리인지 아니면 다른 종교나 철학에 있어서도 이 중도의 사상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학문이나 무슨 이론이든지간에 그 시대상을 떠나서는 그 학문이나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대개 말합니다. 아무리 큰 학설이라해도 평지돌출한 것은 있을 수 없고 오직 과거 학설의 영향을 받거나 그것을 조금 발전시키거나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하여 신학설이란 것도 시대적 변형과 시간적 발전이라고 봅니다.

 불교연구가 깊지 못하였을 때는 세계의 불교학자들도 중도사상(中道思想)이란 것이 인도사상의 하나의 발전과정이지 부처님이 독창적으로 새로 발견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연구가 깊어짐에 따라서 고대 인도에 있어서 부처님 앞에도 중도사상은 없었고, 당시에도 중도사상이 없었으며 오직 부처님만이 발견하고 성립시킨 새 진리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 세계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우정백수와 인도의 바루아의 공적이 제일 크다고 보겠습니다.

 그럼 인도사상에서 어떻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

 부처님 당시까지의 인도사상을 크게 나누면 하나는 바라문사상이며 하나는 여기에 반대하여 일어난 일반사상 즉 육파철학(六派哲學) 사상이며 이것은 불교에서 육사외도(六師外道 : 부처님 당시의 여섯명의 유력한 철학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말한다. 외도란 불교 이외의 도(道)를 설하는 사람의 의미이다.) 라고도 합니다.

 인도의 정통사상인 바라문교에서는 전변설(轉変說)을 주장합니다.

 전변설이란 우주의 최초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근본적인 것 즉 범(梵 : 브라흐마)를 인정하고 이것이 전변하여 순차적으로 잡다함이 생겨서 우주만물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또 그 개개 물체 가운데 유일무이한 브라흐마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재신(內在神)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말하자면 범신(梵神)사상으로 종교적이며 정신적이며 유신적(唯神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사를 해탈하여 참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으려면 부정과 죄악에 물들여진 내재신으로서는 해탈 할 수 없으므로 마음을 제어하는 명상법을 발전시켜습니다. 육체적인 어떤 노력보다도 정신적 수양을 하는 수련방법을 택했던 것이니 이것을 보통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합니다.

 다음 일반사상 즉 육파철학에서는 적취설(積聚說)을 주장합니다. 적취설은 이 허공중에 독립하여 상주하는 독립된 많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체만물은 이들 제 요소가 서로서로의 결합과 집적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서 결코 유일무이한 근본적인 무엇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고 하는 단일한 근본체를 부인합니다. 이 설은 기계관에 빠지기 쉽고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적 정취도 결여되어 있다고 봅니다. 적취설에 있어서는 물질과 정신을 이원론적(二元論的)으로 보아서 정신이 물질인 육체에 속박되어서 생사를 해탈하지 못하므로 육체의 세력을 약하게 하면 그만큼 더 정신이 자유로와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고행주의(苦行主義)를 택했습니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전변설이란 종교적 유신적(唯神的)이며 적취설은 과학적 유물론적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상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하는 것인데 상세히 설명하려면 끝이 없고 간단히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바라문계층의 수정주의자인 아라다 선인과 우드라가 선인에게 가서 공부하여 그들이 체험한 극의(極意)를 증득했으나 실지의 해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전변설을 주장하는 수정주의를 버리고 다음에 적취설을 주장하는 고행주의자로 가서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육년동안 갖은 고행을 다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어서 고행을 버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공부해서 정각(正覺)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인도 수행방법의 양대 조류인 전변설의 수정주의나 적취설의 고행주의를 다 버리고 자기 독특한 새 입장을 개척한 것입니다.

 부처님 전의 모든 인도 사람들은 참으로 우주의 근본원리를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중도를 몰랐으며 부처님만이 우주의 근본원리를 바로 깨쳐 중도사상을 천양한 것인만큼 인도사상의 시대적 변형이라든가 시간적 발전이라고 볼 수 없는 부처님이 처음 제창하신 새출발의 사상이라고 학자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사상이 인도에 있어서는 그렇지만 동 · 서양을 통해서 중도와 같은 사상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도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유교의 중용(中庸)과 불교의 중도(中道)가 같은 것이 아니냐고 흔히들 말하는데 전혀 틀리는 사상입니다.

 중용(中庸)이란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책인데 그 책 속에서 "희 · 노 · 애 · 락이 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희 · 노 · 애 · 락이 나서 적당하게 사용되는 것을 화(和)라고 말한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한 바 "희 · 로 · 애락이 나지않는 것이 중(中)이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중도가 아니냐 ?고 말할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누누히 설명 해왔지만 양변을 여의는 동시에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이므로 중용과는 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쌍차쌍조(雙遮雙照)를 내용으로 하는 중도를 바로 알게 되면 동서양의 모든 종교나 철학이 불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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