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와 촌놈
상태바
오기와 촌놈
  • 관리자
  • 승인 2009.06.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리수 그늘

금년 6학년인 딸 아이가, 아내가 지난 겨울에 사놓고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고급 보온 물통을 갖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 무엇하러 세삼스레 그 물통을 들고 가느냐 했더니 아내의 말인즉, 딸 아이가 금년도 자기 학급의 반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원들에게 따뜻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가지고 간다고 했다.

평소 활달하고 외향적인 아이인지라 반장이 됐다고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신통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애초에 반장에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자기 할 일도 못하면서 남의 앞에 나서서 설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녀석이 그답잖은 오기(?)하나로 반장에 출마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자기 반에서 5학년 때 실장을 맡았던 여학생이 가정이 부유하고 엄마의 교육열도 극성스러워서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또한 교만하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 아이가 녀석을 부르더니, ‘너는 부반장이나 출마를 해보면 좋겠다.’고 은근히 멸시하는 듯이 말하더라는 것……. 그래서 녀석이 그만 자존심이 상해서 마침내 그 아이와 대결하겠다고 나섰는데 그것이 그만 반장이 되기에 이르렀다고 제 엄마도 신기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사유를 듣고 그날 저녁에 녀석을 불러 앉혀 놓고 축하와 더불어 충고를 했다. 남과 경쟁해 보겠다는 오기나 자존심은 좋으나 무턱대고 반장에 나선다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일러 주었다. 남을 위해 무엇을 도와주고 어떻게 하면 봉사할 수 있는가를 찾아나서기 위한 일이라면 백번 천번이라도 좋지만 그것은 단순한 아동적 감정처리라고 말했다. 나 자신도 말은 그렇게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녀석의 행위가 신통한 데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